현역은퇴 구자철의 축구 인생 최고 순간은 "런던올림픽 동메달"

연합뉴스 2025-01-14 15:00:10

"한국 축구 최초의 올림픽 동메달 멤버 중 하나로 기억됐으면"

가장 아쉬운 것은 주장으로 참가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축구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구자철(35)이 올림픽 동메달의 기쁨과 월드컵 실패의 아쉬움을 모두 안고 18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구자철은 1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축구 선수로서의 삶을 매듭짓는 감회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이제 구자철은 제주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구단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역할로 축구인생의 2막을 시작한다.

구자철은 이청용(울산 HD), 기성용(FC서울) 등과 함께 201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한 선수다.

연령별 대표도 두루 거친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컵에 세 차례(2011년·2015년·2019년) 출전했고, 월드컵 본선 무대도 두 차례(2014년·2018년)나 밟는 등 A매치 76경기에 나서 19골을 터트렸다.

2011년 아시안컵에서 5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따는데 앞장서는 등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프로에서는 2007년 제주에서 데뷔해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유럽 진출에 성공한 구자철은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와 카타르의 알가라파, 알코르를 거쳐 2022년 제주로 돌아와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한 구자철은 "수년 전부터 현역 은퇴를 고민하고 준비했다"면서 "제 근육, 무릎, 발목이 버텨주지 못하더라.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을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에 돌아와 저를 발굴하고 키워준 제주에서 은퇴하고 싶었던 꿈을 이룰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구자철이 선수 생활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중에서도 구자철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런던 올림픽 시상식을 꼽았다.

당시 구자철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쐐기골을 터트려 2-0 승리를 이끌고 한국 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구자철은 "시상대에 서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에 동메달을 목에 걸고 있었다"며 "1년 전 한일전 패배의 아픔을 털어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구자철이 말한 1년 전 한일전은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열린 친선경기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0-3으로 참패했다.

구자철은 "비행기를 타고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가 인천으로 들어온 뒤 삿포로에 경기 이틀 전 도착했다"고 당시 대표팀 합류 과정을 소개한 뒤 "한일전인데 0-3으로 져 굉장히 부끄러웠다. '다음 한일전 때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구자철은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미국전 페널티킥 골, 2011년 아시안컵 호주전 골, 2016년 서울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왼발슛으로 넣은 골 등을 기억에 남는 득점 장면으로 꼽았다.

인사하는 구자철

구자철에게는 한일전 패배보다 더 아쉬운 순간이 있다.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으나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구자철은 "그때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최연소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왔지만, 개인적으로 자랑스럽지 않다"면서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때는 그 책임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결과가 아쉽고 죄송했다"고 말했다.

친구 이청용, 기성용보다 먼저 은퇴하는 데 대해서는 "'고생했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더라. 성용이와 청용이를 존경하면서 많이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너무 훌륭한 선수들"이라면서 "'은퇴를 먼저 하니 잘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들도 조만간 은퇴할 것 같은데, 잘 기다리고 있겠다. 같이 뛰어서 영광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 이어 행정과 지도자로서의 준비 등에 대해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눈다면서 "저도 A, P급 지도자 자격증을 계속 따야 한다. 제주 구단 유소년도 육성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되겠다"고 밝혔다.

구자철, '이제는 유스 어드바이저'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활동에 대해서는 "현장의 어려움을 아직 잘 모른다"면서도 "유소년 시스템이 긍정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마음은 확고하다. 매듭을 지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지혜롭게 해보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또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 제주 선수단 구성이 탄탄해지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것이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목표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구자철은 제2의 축구 인생에서 최종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차마 입 밖으로는 안 나오는 것 같다"며 구체적인 답을 피했다.

'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구자철은 아버지, 아내 등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포즈 취하는 구자철

축구 선수로서 성공을 꿈꾸는 유소년 꿈나무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형들이 U-20 월드컵에 출전하려고 출국하면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나서 '나도 꼭 청소년대표를 하겠다'는 마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면서 "목표를 명확하게 갖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꿈을 그려볼 만한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후배들에게는 "나는 해외에 갈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면서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해 목표를 세워놓고 미친 듯이 하고 싶으면, 몸이 움직이게 되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고 주문했다.

구자철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준비 중인 18세의 양민혁과 과거의 비슷한 또래 구자철을 비교해 달라는 말에는 거두절미하고 "양민혁이 낫다. 지금 토트넘에 가 있지 않으냐"고 말해 잠시 웃음꽃이 피게 했다.

마지막으로 구자철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구자철은 "우리나라 축구 선수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데 함께 했던 멤버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고 답했다. "2014년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쁨을 드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팬들을 기쁘게 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