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2인자인 삼봉 정도전에게 전국 8도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 물었다. 고려 말 권문세족과 맞서다 귀양을 갔던 정도전은 산천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8가지 사자평(四字評)을 내놨다. 삼봉은 경기도 사람들을 거울 속 미인과 같다고 해 경중미인(鏡中美人)라고 평했다. 충청도는 상쾌한 바람과 밝은 달 같다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같다는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는 늘 꿋꿋한 소나무와 대나무 같다는 송죽대절(松竹大節)로 비유했다.
북쪽으로 올라간 삼봉은 평안도 사람들을 깊은 산속의 사나운 호랑이 같다는 산림맹호(山林猛虎)라고 했다. 이에 태조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함경도 사람들은 어떠한가라고 묻자 삼봉은 머뭇대다가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빗댔다. 졸지에 싸움개가 돼버린 태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눈치 빠른 삼봉은 "악착같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돌밭을 가는 소라는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덧붙였다.
이전투구는 본래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끈질긴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엔 주로 아귀다툼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귀(餓鬼)는 목구멍이 가늘고 길어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귀신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말 뒤에 '다툼'이 뒤에 붙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형국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탐욕을 끊지 못한 아귀가 가는 곳은 나라카(naraka), 한자로 나락(奈落)이다. 나락은 지옥에서도 맨 밑바닥이라서 한번 떨어지면 절대 헤어날 수가 없다. 나락에 떨어졌다는 건 모든 희망이 끊어진 절망을 의미한다.
개혁을 기치로 내건 개혁신당이 출범 1년 만에 자중지란에 빠지며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창당 주역이자 당의 대주주 격인 이준석 의원과 금배지를 던지고 이 의원과 한배를 탔던 허은아 대표가 당 주도권을 두고 상호 비방과 폭로전을 불사하고 나섰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게 우리 정치판이라지만, 주류 친윤계의 억압에 함께 맞섰던 남매 같던 사이라서 그런지 정치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두 사람이 정치적 이익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더라도 아귀다툼으로까지 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 '너 죽고 나 살자' 식 다툼을 계속 벌인다면 그 끝은 분당의 나락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포용력과 정도전의 순발력이 두 사람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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