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에 교육봉사도…모든 재능 기부하는 '수리특공대장'

연합뉴스 2025-01-13 10:00:10

2009년부터 6천시간 봉사한 황금택씨 "작은 도움으로 세상 바꿀 수 있어"

전등 교체하는 수리특공대장 황금택씨

(인천=연합뉴스) 황정환 기자 = "(똑똑) 계십니까? 전등 교체하러 왔습니다."

인천 최저기온이 영하 12.2도를 기록한 지난 9일 중구 율목동 박모(64·여)씨 집에 다홍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6명이 모였다.

화장실에서는 수명이 다 된 전등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동안 방 안에서는 보일러를 점검하며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의 안부도 살폈다.

박씨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집안일이 많은데 매번 도움을 받아 정말 고맙다"고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도 취약계층 집을 찾은 봉사자들은 인천중구자원봉사센터 소속 '수리특공대'다.

인천에 사는 황금택(71)씨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간단한 집수리를 위해 2017년 만든 봉사단체로, 현재 16명이 활동하고 있다.

수리특공대장인 황씨는 "2016년 독거노인 집에 연탄보일러를 설치하러 갔을 때 작은 집안일만 생겨도 일상생활이 매우 힘들다는 걸 느꼈다"며 "수시로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수리특공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취약계층이 도움을 요청하면 한 달에 많게는 10일가량 각 가정을 방문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막힌 변기 뚫기, 방충망·샤워기 교체 등 소규모 집수리로 취약계층의 걱정거리를 단숨에 해결해준다.

황씨는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보람"이라며 "불편 사항을 해결해주고 듣는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며칠씩 감동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소규모 집수리 활동하는 수리특공대

그는 다른 봉사자들을 취재해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는 '참! Story 기자단' 활동도 하고 있다.

또 신규 자원봉사자, 초·중·고등학생,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봉사의 의미와 필요성을 알리는 교육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황씨의 봉사는 34년 전 함께 일하는 동료를 도와준 것부터 시작됐다.

1991년 인천항을 관리하는 인천항부두관리공사에서 근무한 그는 인향초중고야간학교(이하 인향야학)를 다니며 일하던 사무보조 직원으로부터 "학교에서 친구들과 운동하고 싶은데 운동 시설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고 직원들과 힘을 합쳐 운동장에 배구 네트와 농구 골대를 설치해줬다.

학교 교육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직원들에게 전기료라도 내자고 제안했고, 60여명의 직원이 매달 5천원씩 기부하기로 했다.

이렇게 모은 30만∼40만원을 1991년부터 그가 퇴직한 이듬해인 2008년까지 인향야학에 전달했다.

대학교에서 보건환경학을 전공한 황씨는 퇴직 후 이곳에서 과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9년에 학교가 중구자원봉사센터 수요처로 등록돼 정식으로 자원봉사자가 됐다.

그는 과학뿐만 아니라 별도 사무실을 얻어 글을 잘 모르는 나이 많은 학생들에게 한글도 가르쳤다. 시험 지문이 길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검정고시에서 여러 번 떨어지자 추가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 여학생은 30년 전에 받은 연애편지에 답장을 쓰려고 글을 배웠다"며 "남편에게 글을 써서 큰소리로 직접 읽어줬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다"고 전했다.

한글 교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모임 인원 제한으로 2020년까지 이어지다가 중단됐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황씨는 3년간 방역 봉사를 지속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 동행 사업에도 참여했다.

화이팅 외치는 김관택씨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봉사 시간 6천 시간을 넘긴 황씨는 지난해 10월 인천시자원봉사센터가 개최한 '2024년 우수사례 공모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황씨의 꿈은 자원봉사자 100명을 모아 집수리, 강의, 미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봉사하는 사단법인을 만드는 것이다.

황씨는 13일 "6·25전쟁 이후 태어나 굶주림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다"며 "은퇴를 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만 손을 내밀면 누군가의 삶이 바뀔 수 있다"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덧붙였다.

hw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