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과정서 민족주의와 협력…합법적 운동방식·대중권리 강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한민국의 사회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를 동일시하는 시선은 남북이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전히 대립하는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한국 사회주의 사상의 기원과 형성을 조명하는 '한국 사회주의사상·문화사' 총서의 첫 성과물인 '또 다른 사회주의'(역사비평사)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심도 있게 탐구한 책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출신인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회주의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짚으며,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수용과 실천 과정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풀어낸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의 이념과 운동이 어떻게 한국 근대사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고 변형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독자에게 새로운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한국 사회민주주의를 서구나 일본의 사회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독특한 사상적 흐름이라고 강조하면서, 한국 사회민주주의만의 네 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바로 '우파 사회민주주의의 부재',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협력', '합법운동 중시와 코민테른 조직 노선 부정', '민주주의와 대중권리 옹호'다.
책은 한국 사회민주주의는 식민지라는 특수한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형성됐기에, 서구 사회민주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파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일제의 강압적 통치와 정치적 억압 속에서 계급 협조를 지향하는 우파적 사민주의는 발붙이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초기 주도 세력은 주로 공산주의 운동 경험을 가진 인물들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민족적 독립과 경제적 발전을 위해 민족 부르주아지와 협력한 것도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독특한 모습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해방 후 정당 활동과 좌우합작운동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력을 추구했다고 분석한다.
책은 또 한국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코민테른과 같은 전위정당 중심의 비합법적 조직 노선을 부정하고, 합법적 운동 방식을 선택한 점에 주목한다. 신간회나 민족당 등 합법적 정치 조직을 통해 대중 운동을 이끌고자 한 이들의 시도는 당시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대중을 광범위하게 조직하려는 실천적 노력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과 달리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적 권리를 필수적인 목표로 삼은 것도 두 사상의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짚는다. 저자는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민주주의 운동을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단계로 인식했다고 설명한다.
책은 정통적 이념과 조직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의 다양한 형태와 실천도 조명한다.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의 지도뿐 아니라, 그 외 대중 운동과 다양한 사회주의 실천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폭넓은 저변을 탐구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공산주의 체제 몰락 이후에도 사회민주주의는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라고 저자는 강변한다.
윤덕영 지음. 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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