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투어 마지막 공연 현장에 팬 운집…'나사모' 플래카드 여럿 걸려
"철학적 가사 담긴 명곡들…그 노래 '맛' 아무나 못 살린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나훈아가) 은퇴한다는 말을 듣고 제 마음과 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무너지고 있어요."
12일 오후 가수 나훈아가 마지막 콘서트를 여는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이곳에서 만난 나훈아와 동향인 부산 출신 백양산(68) 씨는 "(가수를) 그만두시더라도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 모두 다 했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관람을 앞둔 마음을 이같이 밝혔다.
백씨는 "나훈아는 사람 자체가 다른 가수들과 다르다. 생각하는 것이나 노래가 모두 다르다"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69년 처음 이 노래를 듣고 '훈아님'을 평생 좋아하게 됐다"고 먹먹히 말했다.
공연장 인근에는 '오빠 부대' 말고도 백씨 같은 중·장년층 남성도 상당해 남녀를 아우르는 나훈아의 인기와 카리스마를 입증했다.
추운 날씨에도 백발이 성성한 이들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팬들은 저마다 패딩 점퍼와 털모자 등으로 '무장'하고 공연장을 찾았다.
부산에서 상경한 이문희(62) 씨는 "나훈아는 가사 등 모든 것이 철학적이다. 위대한 가수"라며 "20대 초반에 부산의 어느 무대에서 나훈아의 공연을 처음 보고 푹 빠져서 그때부터 그의 공연에 다니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어릴 때부터 나훈아를 통째로 끌어안았다"고 돌아봤다.
이씨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공'과 '테스형' 등을 꼽으며 "아무나 쓸 수 없는 명곡들"이라며 "그래서 나훈아가 '마지막 콘서트'를 발표했을 때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연이 열린 KSPO돔 전면에는 공연명 '고마웠습니다!'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오른손에 마이크를 든 나훈아가 붉은 한복을 입고 팔을 시원스레 벌린 모습에서는 비록 사진이지만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공연장 인근에서는 공식 현수막과 포스터 외에도 팬들이 직접 마련한 플래카드가 여럿 내걸렸다.
'나사모'(나훈아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은 '기장 갈매기는 계속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투표로', '훈아님 없는 세상, 내일은 해가 뜰까 지구는 돌아갈까', '영원한 전설 가황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등의 재치 있는 문구로 나훈아를 배웅했다.
팬들은 '최고 가황 나훈아' 같은 문구를 붙인 모자를 마련해 쓰거나, 플래카드 속 환하게 웃는 나훈아의 사진에 볼을 비비는 등 열렬한 팬심을 드러냈다.
또 다른 '나사모' 회원 김진희(62) 씨는 17세 소녀 시절부터 나훈아가 공연한다고 하면 서울, 경상도, 전라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따라다녔다고 했다.
김씨는 "(은퇴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훈아는 58년 동안 우리에게 행복을 많이 안겨준 분이다. 그래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내 인생의 최고의 벗이었다"고 기억했다.
이곳에서 만난 팬들은 하나 같이 TV를 접하기 어려웠던 1960∼70년대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사랑은 눈물의 씨앗', '천리길', '임 그리워' 등의 명곡을 접하고 나훈아에게 빠져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듣는 이를 웃고 울리는 특유의 철학적인 가사로 일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한 '진국' 같은 싱어송라이터였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팬은 "나훈아의 연륜에서 나오는 노래의 '맛'은 아무나 못 살린다. 젊은 후배 가수들은 따라올 수 없다"며 "노래도 잘하고, 코멘트도 재미있고, 잘생기고, 남자다워서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나훈아는 이날 서울 KSPO돔에서 여는 두 차례의 콘서트를 끝으로 자신이 밝힌 데뷔 연도인 1967년 이래 58년 간의 가수 생활을 매듭짓는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직 활동할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있을 때 그만둔다는 것은 물러날 때를 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행보"라며 "박수칠 때 떠난다는 말을 직접 실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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