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오케스트라 연주 로봇의 등장

연합뉴스 2025-01-13 00:00:08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준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지난 해 10월 로봇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독일의 지역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진포니커(Sinfoniker)에서 '마이라 프로 에스'(MAiRA Pro S·이하 마이라)라는 이름의 차세대 로봇 지휘자가 정식 음악회에 데뷔했다.

음악회는 드레스덴 진포니커 창립 25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행사 제호도 '로봇 심포니' 콘서트로 열려 인간 지휘자와 로봇 지휘자의 연주로 나눠 선보였다. 첨단 로봇에게 새로운 지휘 기법과 21세기 기술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이기 위한 취지의 행사였다.

지휘자로서 무대에 선 마이라는 3개의 로봇팔을 갖고 있었다. 마이라는 3가지 색깔의 야광봉을 들고 템포에 맞게 오케스트라 멤버를 지휘했다. 각 로봇팔은 악기의 그룹을 템포에 맞게 지휘하며 음악회를 이끌었다.

마이라가 드레스덴 심포니커를 지휘하며 연주하는 모습

즉, 인간 지휘자가 구현하기 힘든 부분을 로봇팔로 지휘해 오케스트라를 구현한 것이다. 로봇팔이 인간 지휘자의 움직임을 사전에 학습했다.

이 기술은 단순히 연주의 정확한 템포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음악적 표현과 감정 전달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

또한, 인공지능이 특정 상황(음악 지휘)에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고 인간의 창의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이라가 각기 다른 색깔의 짧은 광선검 모양의 지휘봉을 쥐고 박자를 맞추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오케스트라는 3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각의 지휘봉에 반응하며 교차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하면 일부 파트는 느리게 시작해 속도를 높이고 다른 쪽은 속도를 늦춰 선보인 음악이 '단일 소스에서 나온 것처럼' 부드럽게 들리게 만들 수 있었다.

마이라의 개발에 참여한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 마르쿠스 린트는 20여년 전 복잡한 곡을 연습하면서 정교한 로봇이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린트는 드레스덴 공과대학의 '인간 참여형 촉각 인터넷 센터'(CeTI)의 전문가와 협업했다. CeTI는 로봇과 인간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로봇 지휘자 마이라의 혁신을 이뤄냈다.

린트는 마이라에게 인간 지휘자를 가르치듯 팔 동작을 40번 정도 시연하면서 2년간 개발에 참여했다. 마이라는 린트의 지도로 복잡한 지휘 동작을 통합해 익혀왔다.

각 팔에는 7개의 관절이 있어 모든 방향으로 관절의 가동성이 자유롭다. 지휘봉을 세게 휘두를 때 안전 메커니즘이 작동해 마이라 본체나 오케스트라 멤버에게 피해가 없도록 설계됐다.

마이라는 복잡한 실험적 시도가 넘치는 곡을 지휘하거나 교육 목적으로 활용할 때 유용하다. 필자의 관점으로는 마이라와 같은 기술은 음악 분야 종사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라드 뮤라드와 첼로 연주 로봇

지난 해 10월, 스웨덴에서도 로봇팔이 오케스트라에서 직접 첼로를 연주한 사건(?)이 벌어졌다. 산업용 로봇팔과 3D 프린팅 부품을 결합한 이 로봇팔은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과 활질을 따라 하도록 설계됐다.

작곡가 뮤라드는 인간 연주자가 연주하기 힘든 부분을 로봇팔이 대신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력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뮤라드는 이 로봇팔이 첼로 연주를 위해 음악을 코드로 변환시키는 것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로봇이 인간처럼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해석된(?) 코드를 연주하는 방식이다.

그는 기술과 음악이 이런 방식으로 융합해도 인간 예술가를 대체하는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고 밝혔다.

필자는 창작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전 칼럼에 언급한 에이다(Ai-Da)나 마이라, 뮤라드의 첼로 연주 로봇팔 같은 기술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인공지능이 직접 예술 활동을 하고 창작에 참여하는 현실은 '예술가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하는가?'는 근본적 물음으로 이어졌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아직 세상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련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예술의 주체는 누구인가?

창작의 탄생은 누가 주도하는가?

필자는 물론 예술계 종사자, 지도자, 지망생 등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로봇팔 첼로 연주자 개발에 참여한 뮤라드의 주장처럼 이런 부류의 기술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도구'로 봐야 한다.

인간 예술가의 영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관점이다.

지금 이 시기가 예술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각자의 한계를 보완해주고 있는 때로 봐야 한다.

앞으로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의 협력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도구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다음 세대의 예술가는 혁신적 예술 작품에 도전하게 되고,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창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예술은 '테크네'와 '아르스' 시절을 거쳤고 기술은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한계 없는 팽창과 발전을 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일찍이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그의 저서 '불가능은 없다: 투명인간 순간이동 우주횡단 시간여행은 반드시 이루어진다'(2010)에서 언급한 대로 지금 시대의 기술로 불가능한 도전은 없다.

다만 시간만 걸릴 뿐이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