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인간이 직접 써야 하는 이유…신간 '쓰기의 미래'

연합뉴스 2025-01-12 08:00:11

언어학자가 이야기하는 글쓰기의 이점과 생성형 AI의 함정

AI 이미지 (PG)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1916∼1990)이 1953년 내놓은 단편 '자동 작문 기계'에 등장하는 청년 아돌프 나이프는 수많은 단어를 문법 규칙과 결합해 틀에 박힌 플롯에 넣으면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장치를 발명한다.

이 기계는 잘 팔리는 소설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나이프는 떼돈을 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 작가들이 밥줄이 끊기게 된다. 달은 이 작품에서 "도대체 누가 이야기 쓰는 기계를 원한다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2022년 11월 말 오픈AI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공개하면서 약 70년 전에는 공상과학(SF)에 등장한 허무맹랑한 기계는 현실이 됐다.

쓰기는 오랫동안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겨졌다. DNA가 인간과 99% 동일한 침팬지는 수화를 배울 수는 있지만 이메일을 작성하지 못하며 감정을 담은 편지를 쓰거나 문학 작품을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글 쓰는 AI가 보급되고 이를 활용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간이 직접 글을 써야 하는지 의문을 느낄만한 시대가 됐다. 언어학자이며 미국기호학회 회장을 지낸 나오미 배런은 신간 '쓰기의 미래'(북트리거)에서 AI 시대에도 왜 인간이 직접 글을 써야 하는지 답한다.

챗GPT

책은 어린아이가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점이나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문해율을 상승시키고 이를 통해 자기 발견의 기회를 확대하고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 가능성을 변모시킨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만약 쓰기를 AI에 맡겨버리면 인간의 수고를 줄이는 이점을 훨씬 넘어서는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읽거나, 읽고 쓰는 행위는 인간의 뇌를 변화시킨다. 읽고 쓰는 사람은 문해력이 없는 이들보다 뇌에서 시력과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영역이 더 많이 활동한다. 또 8∼12세 이동이 독서를 많이 하면 뇌 속의 연계성이 증가하는 인지적 이득이 생기지만 영상 매체에 많이 노출되면 그런 연계성이 감소한다고 한다.

심지어 글을 쓰는 방식도 뇌에 미치는 영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타이핑할 때보다 손으로 쓰거나 그리기를 하면 기억을 저장하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데 중요한 뇌의 영역에서 더 많은 활동이 나타난다.

나오미 배런

AI를 활용한다고 인간의 글쓰기 능력이 퇴보한다는 것은 과도한 우려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자동차가 생겼다고 인간이 걷기를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나 덜 걷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쓰는 행위로 인해 얻었던 지능과 정신적 능력을 우리가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고 AI가 언어를 활용하는 능력이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위험을 설명한다.

현대인이 AI가 주는 여러 편리한 기능을 굳이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책은 그럼에도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고양하고, 타인과의 공감대를 키우고 인류의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데 불가결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쓰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표현하는 행위다. (중략) 설득력 있고 통찰력 넘치는 수많은 작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오타가 있고 서툰 문장이라고 해도 나의 글은 내 마음과 체험에서 흘러나왔다. (중략) 인간의 글쓰기는 인간의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다른 사람과 이어주는 마법검이다. 아무리 도우미로서 AI가 효율적이라 하더라고 그 검이 빛을 발하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배동근 옮김. 엄기호 해제. 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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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