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냉골 생활 습관됐어요" 취약 홀몸노인들의 고단한 겨울

연합뉴스 2025-01-11 09:00:10

등유 보일러 살피는 할아버지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물가는 오르고 기름값도 부담이라 하루하루가 힘드네요. 나라라도 빨리 안정되면 숨통이 트이려나요"

낮 최고기온이 영하에 머무른 지난 10일 청주 내덕동의 한 주택.

집 안인데도 두꺼운 패딩을 껴입은 홀몸노인 이 모(82) 할아버지의 입에서 입김이 퍼졌다.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 체포영장 관련 뉴스가 계속 전해지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에게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더 절실해 보였다.

평생 모은 1천만원으로 마련했다는 10평 남짓한 전셋집은 외풍을 전혀 막지 못하는 듯 냉기가 가득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주방 바닥에는 낡은 장판지가 덧대어져 있었지만, 양말을 신고 걸어도 발바닥이 시렸다.

기초연금과 시니어클럽의 '등하굣길 학교 안전지도' 일로 번 60만원으로 전기세, 약값, 병원비를 내고 나면 난방비에 쓸 돈이 빠듯해 동파되지 않을 정도로만 보일러를 최소한도로 틀어서다.

강추위는 이어질 태세지만, 겨울방학으로 안전 지도 일거리가 끊겨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 할아버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어서 정부의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됐다"며 "돈이 부족하면 한 끼 덜 먹고 난방비를 아끼는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집 안에서도 패딩 입은 할아버지

청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농촌 지역에서 홀로 사는 권 모(81) 할머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십 년의 세월을 품은 흙집 창문에는 바람을 막으려는 듯 온갖 옷가지가 겹겹이 끼워져 있었고, 찬 바닥에는 이불이 층층이 깔려 있었다.

주방은 실외에 지붕만 얹어 놓은 형태로 한파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냉골 생활이 습관이 됐다는 권 할머니도 보일러는 있지만, 돈 걱정에 살을 에는 혹한의 날씨가 아니라면 낡고 해진 전기장판에만 의지해 겨울을 난다.

권 할머니는 "복지관에서 매년 (겨울에) 이렇게 도와주는데 노인네들은 얼른 죽어야지…"라고 말끝을 흐리더니 "매번 신세만 져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돕기 위해 지역 복지관은 겨울철에 적게는 5가구 많게는 20가구까지 난방유(등유)를 지원한다.

하지만 유가 불안정성과 줄어드는 모금액으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상혁 내덕노인복지관 지역복지팀장은 "코로나19 이후 경기가 좋지 않아 모금액이 반토막이 났다"며 "2년 전만 해도 700만원 정도를 모았는데 지난해에는 300만원에 그쳐 5가구밖에 지원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도 취약계층의 생활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정 팀장은 "매주 생선 등 고기를 포함한 5가지 반찬을 취약 노인들에게 가져다줬는데 물가가 너무 올라 4가지로 줄였다"며 "최근에는 가공식품 가격까지 올라 어르신들이 좋아하던 두유도 못 드렸다. 도움이 절실한 분들에게 충분하게 지원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청주시는 홀몸노인 등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기업이나 공동모금회(희망 나눔 캠페인) 등의 후원을 받아 월동 난방비와 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를 발굴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