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20) 꿈의 바이칼-⑤

연합뉴스 2025-01-10 14:00:06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

우아직(UAZ)차를 타고 후지르에 돌아와 한국제 버스로 갈아타고 안가라강을 따라 40분쯤 달리면 '리스트비얀카'라는 강마을이 나온다. 강 건너 포트 바이칼이라는 항구로 또 배를 타고 건너간다. 이 배는 사람들을 강 건너 환 바이칼 열차(Trans Baikal Railway)의 간이역에 내려준다.

바이칼의 그 엄청난 물이 모두 흘러 나가는 안가라강 어귀, 강과 호수가 만나는 바다처럼 넓은 물가에 큰 바위 하나가 돌출돼 있다. 안가라강에 댐이 만들어진 후에는 호수를 바라볼 때마다 매번 수위가 달라, 이 바위는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됐다가, 작은 하나의 바위가 되기도 하고 그 모습을 스스로 바꾼다.

이 바위를 두고 '사랑의 바위'라고 부르게 된 사연이 있다. 거대한 바이칼 호수에는 336개의 강이 흘러 들어오고 그 물이 흘러 나가는 곳은 오로지 이 안가라강 단 한 곳뿐이다.

부랴트족의 전설에 의하면 바이칼을 아버지라 하고 336개의 강을 아들이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가는 단 하나의 강, 앙가라는 그의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청년 이르쿠트에게 딸을 시집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앙가라는 북쪽의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모하여, 어느 날 아버지 몰래 호수를 빠져나와 도망을 친다.

여기까지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와 비슷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바이칼은 바위를 던져 딸을 죽인다. 외동딸 앙가라가 이때 흘린 눈물이 큰 강을 이루어 1천800㎞나 떨어진 예니세이강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바위가 '사랑의 바위'로 떠오른다. 아니면 이곳의 슬픈 역사 그대로 몽골의 정복 루트이자 제정러시아의 영토확장 루트 상에 있던 이 지역 원주민들의 시체가 쌓여 그 바위섬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철도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자작나무숲이다. 사실은 러시아 여행 자체가 자작나무를 보는 여행이라는 쪽이 옳다. 왜냐하면 자작나무는 귀족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끝도 없이 자작나무 숲을 달리니, 때로는 믿을 수가 없다. 그것도 너무도 잘생긴, 키가 크고 둥치가 굵은 하얀 몸뚱이의 나무 한 그루를 보아도 즐거운데 더 강조하거니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으니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다.

나는 이전에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여덟 시간의 야간열차에서 밤새도록 자작나무 숲을 감상한 적이 있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는 흰 나무의 숲이었다. 특히 밤이어서 더 아름다웠다.

자다가 깨어 보면 또 하얀 숲, 그리고 또 가도 가도 하얀 숲, 러시아 문학은 자작나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던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일본에서도 자작나무는 소설, 시, 단가에 많이 등장한다. 일본말로 '시라카바'라면 대단히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이 나무는 모양이 좋아서 정원수나 가로수나 조림용으로 많이 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가 안 맞는지 북쪽에서만 자라고 그도 크고 굵게 자라지 못한다.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는 이것으로 최고 품질의 가구를 만들고, 최고의 내장재로 쓴다.

물론 아주 크고 굵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재질이 곧고 색상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를 보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팔만대장경이다. 보통 대장경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본판은 산벚나무나 동백나무, 박달나무, 단풍나무 등을 많이 썼고, 자작나무는 본판이 뒤틀리지 않도록 하는 마구리 나무로 썼다고 하는 것이 그럴듯하다.

왜냐하면 자작은 재질이 곧아서 비틀리지 않고, 그래서 남이 비틀리는 것도 막아줄 만큼 곧은 나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크게 자라지도 않고, 흔한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귀하게 아껴서 쓰였을 것이다.

그다음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작나무의 연상은 신라 고분 천마총(天馬塚)에서 나온 천마의 그림, 천마도(天馬圖)가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천마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스키타이 문명의 영향이라고 말하는데 비슷한 그림이 고구려벽화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자작나무를 매개로 한 북방 문명이 신라에까지 내려왔다는 생각에서 경이롭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신라 금관에 매달려 살랑거리는 영락은 이 자작나무의 앙증스럽게 작은 이파리를 닮았다. 뒤의 굵은 가지는 자작나무의 가지를 닮았고 앞의 뫼 산(山) 자 모양인 이곳 사슴의 뿔이다.

자작나무를 한자로는 백화(白樺)라 하고 껍질을 백화피(白樺皮)라고 하는데 이뇨, 진통, 해열에 쓰이는 한약재이기도 하지만 흰색 껍질이 얇게 벗겨지므로 러시아 사람은 이것으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공예품을 만든다. 흰 껍질 사이사이에 자줏빛 가까운 갈색의 지점이 있어서 껍질을 둘둘 말아서 태우면 이 수지가 오래 서서히 타들어 가면서 톡톡 튀는 소리가 난다. 그윽한 향기가 어우러지면서, 은은하고 아름다운 조명의 효과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을 화촉(樺燭)이라고 했다는데 결혼식을 두고 '화촉을 밝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촛불을 첫날밤에 밝힌다는 뜻이었다가 간단히 화촉이라고 하게 됐다는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 부랴트 사람은 저 나무를 땅의 정령이 깃든 신성한 나무로 본다. 그리고 이 나무로, 집을 짓고, 불을 때고, 모든 생활용품을 이 나무로 만들어 쓴다. 한마디로 생활 속에 밀착한 귀신나무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밤하늘에 너울거리는 저 나무의 가지들은 귀신들이 추는 춤사위를 보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 자작나무가 하나하나 높이 솟은 솟대같이 보인다. 물론 이곳 사람들에게도 저 나무들은 우주목(宇宙木)이고 신성하다. 하늘과 교통하는 신목(神木)이다. 특별히 이곳 바이칼에 와서 우리의 선배 무당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고 솟대 같은 비슷한 염원을 보고 다니니 자작나무도 솟대같이 보인다.

한 가지 하늘로 높이 솟은 솟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솟대의 숲이다. 떼거리 무당들의 한바탕 질펀한 굿판이다. 또 한 가지 기분이 좋은 것은 그 끝없는 자작나무 사이로 가끔 보이는 떡갈나무와 거대한 붉은 소나무(紅松)의 군락이다.

나무들의 크기가 커서 그렇지, 한국의 산을 닮았다.

한국에서는 자작나무가 잘 안된다. 키도 작고 둥치도 가늘고 전체적으로 비실비실하다. 그런데도 누구 못지않게 우리도 자작나무를 좋아한다. 아마도 DNA에 각인된 북방 민족으로서의 집단기억 때문일까?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문수산 청평사의 인공 조림된 자작나무숲을 보면, 한국인들도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사랑했다는 사례를 보는 듯하다. 특히 그것이 불교사찰이기 때문에 이채롭게 보인다.

그런데 그 절은 그 주변에 무수히 많은 선방과 유교식 강원을 뒀다. 그 자작나무숲도 꼭 스님이 심었다고만 보기는 힘들다. 하기야 불교 전래의 초기에는 국민의 반발도 컸고 이차돈 등 순교자도 많았다.

이 절에 자작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바이칼의 집단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당과의 한 무리였을는지도 모른다.

이 관광열차는 목적지가 있어서 거길 향해 가는 차가 아니다. 가다가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세워서 놀다 가고, 작은 마을을 지나면 세워서 쉬어 간다. 이때를 맞춰 마을 사람들은 작은 장마당을 벌인다.

아니 그저 작은 좌판들을 벌인 좌판 마당이다.

어느 마을에선 살림집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고, 또 다른 경치 좋은 호숫가에선 열차를 세우고 한동안 뱃놀이를 하라고 시간을 준다. 철로 변에는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들꽃들이 장관을 이루며 다투어 피어 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온갖 자태와 색깔과 향내와 몸짓으로 피맺힌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누구를 보이려고 이렇게 피었나'라는 옛 노래가 생각난다.

그리고 기왕에 나도 입속에서 노래 하나를 흥얼거린다.

"찔레꽃 붉게 피이∼는, 남쪽 나라 내 고오∼향, 언덕 위에 초가 사∼암간 그리∼입습니다."

이 북녘땅에서 왜 남쪽 나라 내 고향 생각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기에 오니까 왠지 마음이 푸근한 게 남의 나라에 온 것 같지 않다고 그런다.

그래서 그런 노래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베리아

그리고 아홉 시간의 긴 기차여행 끝에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와 밤 열두 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한항공기에 올랐다.

비행기의 좌석을 찾아 앉자마자 엄청난 피곤이 몰려온다. 그래서 그 자리에 쓰러져 그 바이칼의 '꿈'을 다시 꾼다.

이별이다. 또 그 노래가 생각난다.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내 사랑아…."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