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남진과 라이벌 구도…히트곡 직접 쓰고 공연 연출
정치권 겨냥 거침없는 '쓴소리' 화제…한때 괴소문 시달려
"가수는 꿈 파는 사람"…'아리랑 소리꾼' 자처·정부 훈장 거절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10일부터 사흘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은퇴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여는 가수 나훈아는 1960∼70년대 가요계 팬덤을 일군 '원조 오빠'이자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는 히트곡 다수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파격적인 발언과 퍼포먼스를 내놓으며 지난 58년간 불꽃 같은 가수 인생을 걸어왔다.
◇ 야성적 남성미로 여심 홀린 나훈아…남진과 세기의 라이벌
부산 출신인 나훈아는 초등학교 시절 시 교육위원회 개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밝힌 데뷔 연도인 1967년 이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 그리워'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일약 톱스타로 도약했다.
인기에 힘입어 1971년 '풋사랑'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영광', '우정', '동반자' 등 다수 영화에도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약했다.
그는 특히 당대 최고 남자 가수였던 남진이 월남전 청룡부대에 파병돼 가요계를 잠시 비운 사이 인기가 급상승했고, 두 사람은 세기의 라이벌로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나훈아가 1972년 남진이 속했던 지구레코드로 이적하면서 두 사람의 경쟁은 '한 지붕' 아래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가 작곡가 박춘석의 사무실에서 신곡 '물레방아 도는데'를 연습하는 도중, 남진이 예고 없이 이곳을 찾자 박춘석은 나훈아를 급히 2층 방으로 피하게 하고, 남진이 돌아간 다음에야 연습을 재개시켰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나훈아는 같은 해 2월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대규모 리사이틀을 열고, 1년 전 남진이 세운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 치우기도 했다.
1972년 연말 TV 가요 시상식에서도 나훈아(TBC '방송가요대상' 남자 가수상)와 남진(MBC '10대가수청백전' 가수왕)은 상을 나눠 가졌다.
나훈아는 그해 6월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쇼 스타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가 한 남성으로부터 습격당하는 일도 겪었다. 그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부르고서 '물레방아 도는데'를 막 부르는 도중 괴한이 무대로 뛰어올라 깨진 사이다병을 휘두른 것이다. 나훈아는 당시 이 남성이 악수를 청하러 온 줄만 알았다고 한다.
나훈아는 이듬해인 1973년 공군에 돌연 입대했는데,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음반사 측에서 '정열', '사랑의 느티나무', '처음 본 그대' 등 미리 녹음한 신곡과 음반을 계속 발표해 대중이 공백을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명 K팝 보이그룹이 '군백기'(군 공백기)에 팬덤을 유지하고자 미리 준비한 신곡을 내는 행보를 반세기 전에 일찌감치 보여준 셈이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남진 대 나훈아라는 국내 가요계 최대의 라이벌 구도는 결과적으로 한국 가요를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며 "귀족풍의 미남과 야성적인 남성미의 이 대결은 '부산 사나이'(나훈아)와 '목포 사나이'(남진)의 영호남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200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취소하면서 건강 이상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고 기자회견까지 여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복귀설이 제기되다가 2017년 11년 만에 컴백해 건재함을 과시했고, 이후로는 매년 신보를 발매하거나 콘서트를 열어 '노년돌'로도 불렸다.
그는 2020년 추석 연휴 KBS 2TV에서 방송한 공연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테스형!'을 불러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그를 움직인 힘은 '꿈'이었다.
나훈아는 2008년 기자회견에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며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라고 했고, 그로부터 11년 뒤 컴백 공연 제목은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이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2월 갑작스럽게 은퇴를 전격 발표했다.
그는 소속사 예아라를 통해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전했다.
◇ '사랑은 눈물의 씨앗'부터 '테스형'까지…우리 삶 따라간 히트곡들
나훈아가 데뷔 이래 발표한 노래는 1천200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잡초', '무시로', '공', 18세 순이', '아담과 이브처럼', '땡벌', '홍시', '테스형!' 등 상당수는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들이다.
'살다보면 알게 돼 / 버린다는 의미를 / 내가 가진것들이 / 모두 부질 없다는것을'(공),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자네!),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테스형!) 등 철학적인 가사는 듣는 이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나훈아는 지난 2022년 신보 '일곱빛 향기'를 발표하며 "아프고 혼란스러운 모두의 마음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듯, 나와 모두를 보듬고 달래고 싶은 소망의 선물이 됐으면 한다"고 노래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특히 전통 가요의 계보를 잇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폄하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한 가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콘서트에선 "우리 전통가요란 우리 삶을 그때그때 맞춰 (따라) 내려가는 것"이라며 "(가사로) 속을 살살 헤집고 뒤집고 돌리고 날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해 온 그는 "전통 가요를 불러온 대중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뽕짝', '트로트'라는 호칭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해 아리랑이라고 칭하자"며 '아리랑이라 호칭하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비교적 최근인 2020년 '테스형!'을 히트시킨 데 이어 2022년에는 EDM 스타일곡 '체인지'와 최초의 댄스 뮤직비디오를 내는 새로운 도전도 이어갔다.
나훈아는 손수 세심하게 연출한 콘서트를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70대 나이에도 다부진 체격을 유지하며 무대 위에서 수시로 옷을 갈아입고, "(관객들이 나가지 못하게) 문 잠가라!"라고 외치며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때론 실제 말을 타고 무대에 등장하는가 하면, 거대한 배 모양의 무대에서 노래하거나 드론에 마이크를 실어 하늘로 보내는 등 새로운 퍼포먼스를 구상하는 데 공을 들였다.
◇ 소신 행보에 거침없는 발언…비상계엄엔 "우짜면 좋노"
나훈아는 58년 노래 인생 내내 소신 있는 행보와 거침없는 발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가 지난 2008년 '신체절단설' 등 괴소문에 대응하고자 연 기자회견에서는 "내가 직접 보여줘야겠느냐"며 바지를 내리려던 사건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잘 드러낸 일화로 회자한다.
방송가와 언론계 외에 정·재계를 향해서도 그의 성격은 한결같았다.
나훈아는 자기 인기에 편승하려 정치인들이 정계 입문을 제의할 때마다 "그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누가 부르라꼬?"라며 손사래 쳤고, 재벌가의 공연 요청에도 "콘서트 티켓을 사 보라"는 취지로 거절했다.
또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의 무게까지 어떻게 견디겠느냐"라며 정부 훈장도 사양했다.
그는 2022년 부산 콘서트에서는 2018년 우리 예술단의 방북 공연을 거절한 사실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포 정치 사례를 들며 "그런 사람 앞에서 '사랑'을 부를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대구 콘서트에서는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를 가리켜 "요 며칠 전 밤을 꼴딱 세웠다. 공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며 "(비상계엄으로) 집회가 금지된다는 내용을 보고 '우짜면 좋노' 싶었다. 새벽에 계엄 해제가 되는 걸 보고 술 한잔하고 잤다"라고도 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나훈아는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빈곤기를 지나 경제 개발기로 들어섰을 때 문화적 수요를 빨아들이는 슈퍼스타의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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