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픽!] 근로기준법도, 여름휴가도 없는 그곳…'블랙기업조선'

연합뉴스 2025-01-10 10:00:16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버텨내라. 파직보다는, 유배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진노하는 임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황공하옵니다"라고만 하던 호조판서는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21세기 공무원은 사표라도 던지고 새로운 직업이라도 찾아갈 수 있지만, 이곳은 관직 아니면 패가망신밖에 없는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웹툰 '블랙기업조선'

'블랙기업조선'은 21세기에 살던 발명가가 폭발 사고로 조선 초 총명한 왕세자 이향(문종)으로 환생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대체역사 장르 웹툰이다.

아버지가 세종대왕, 본인은 적장자라는 확고한 입지를 바탕으로 이향은 전생에서 이루지 못했던 발명가의 꿈을 실현해나간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붓을 대신해 만년필과 볼펜을 본뜬 필기구 '금필'을 개발하고, 이듬해에는 우두법을 도입해 천연두 유행도 막는다.

발명은 혼자의 아이디어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향은 아예 연구소를 차리고, 장영실, 정초, 이천 등 인재를 모아 기술 개발에 나선다.

덕분에 신식 총통, 화포 등을 만들며 매일 새로운 성과를 내지만, 함께 일하는 관리들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처자식 얼굴을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세자와 토론을 벌이다가 퇴청 시간이 훌쩍 지나 야근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조선시대라서 근로기준법에 따른 주 52시간 노동은 기대할 수 없고, 여름·겨울 장기 휴가도 없다. 사직을 요청해도 임금이 반려하면 그만이다.

이향은 심지어 워커홀릭다운 새로운 형벌도 만들어낸다.

임금이 금지한 면신례(신고식)를 하다가 걸린 호조 관원들을 호적 장부와 토지 대장을 정리하는 작업에 투입하고, 1년 안에 끝내지 못하면 유배에 보내는 '문서정리형'이다.

21세기 지식을 바탕으로 조선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세자 이향과 그 뒤에서 앓는 소리를 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블랙기업조선'의 재미다.

회귀·빙의·환생이라는 설정을 개인적인 복수보다는 조선시대 발전이라는 대의에 활용해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주상전하의 "쯧"하고 혀 차는 소리에 심장이 철렁하고, 새로운 일이 떨어질 때마다 사직소(사표)를 내고 낙향하고 싶은 관리들의 독백이 소소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소재가 유행하는 웹툰·웹소설 가운데서도 대체역사물은 까다로운 장르로 꼽힌다.

아무리 상상력을 가미했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꼼꼼히 신경 써야 하고 동시에 재미도 놓치면 안 된다.

특히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조선시대를 다룰 경우에는 더 까다롭다. 이른바 '역덕후'(역사 마니아)의 예리한 지적도 피해 가기 어렵다.

'블랙기업조선'도 고증이 허술하다는 지적에서는 비켜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원작 소설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상소문이나 시험지 등 문서 속 한문까지는 제대로 구현하지 않은 점, 소소한 오타들이 눈에 걸린다.

이 웹툰은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