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198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 가두시위가 벌어지면 시위대 맞은편 최전선에는 항상 큰 방패를 치켜든 전투경찰대가 서 있었다. 시위가 격화되면 '최루탄'(SY44)이 발사되고 매캐한 연기 속에 시위대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이때 어김없이 건장한 사내들이 시위대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이들은 흰색 헬멧에 청재킷·청바지, 흰 운동화를 착용하고 짧은 진압봉과 방패 등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백골단'(白骨團)으로 불렸다.
백골단은 1985년 창설된 서울시경찰국 산하 사복기동대로, 무술 유단자들로 구성된 부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임무는 시위 주동자와 참가자들을 검거하는 것이다. 이들의 체포방식은 무자비한 폭력을 동반했다. 때문에 백골단은 당시 경찰폭력의 '시그니처'로 인식됐다. 이들의 폭력적 진압방식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죽음을 불러왔다. 백골단 해체 후에는 전·의경 부대 내 사복체포조를 운영했다. 하지만 경찰 공식 직제에 백골단은 없다.
애초 백골단은 이승만 정부 당시 자유당이 조직한 정치깡패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6·25 전쟁 발발 1주일 전 개원한 제2대 국회는 여소야대였다. 국회는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국민직선제 개헌안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자유당은 백골단·땃벌떼·민중자결단 등 정치테러 집단을 동원해 관제데모를 사주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구실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집권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겠다는 백골단이 다시 등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공청년단'은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예하 조직으로 백골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김정현 반공청년단 대표는 백골단 명칭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폭력적이란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만 지금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면서 "강한 이미지를 가진 백골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백골단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 나선 시민·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당시 야만적 폭력의 대명사였으며, 독재 정권의 수호대와 다를 바 없었다. 특히 여당 국회의원이 이들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반공청년단도 백골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 앞서 역사적 맥락을 다시 한번 짚어봤어야 했다. 굳이 백골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까닭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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