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1·2세대 재매입도 병행…'누가 갈아타나' 실효성 의문도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정부가 9일 발표한 실손보험 개혁 방안의 핵심은 그간 경증 환자의 과잉 비급여 진료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던 만큼 앞으로는 필수 의료 중심의 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잉 비급여 의료 등 이른바 '의료 쇼핑'이 지속되면서 실손보험에서는 매년 2조원 내외의 적자가 발생해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2조8천581억원이던 실손보험 적자는 백내장 과잉 진료 방지대책에 2022년 1조5천301억원 수준으로 줄었으나, 2023년 다시 1조9천738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2조원 내외의 적자가 예상된다.
실손보험금 지급 상위 3개 비급여 항목은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체외충격파 치료 등이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의 과다 보장을 개선하기 위해 1세대부터 4세대까지 3차례 실손보험 개선을 추진해왔으나, 최근에는 4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도 130%를 넘어서는 등 과잉 의료 이용 문제가 지속돼왔다.
실손보험금이 소수 가입자에게만 과도하게 편중되지만, 보험료 인상은 전체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 전체 실손 보험 가입자(3천578만건)의 65%는 보험금을 수령한 적이 없고, 상위 9%가 전체 보험금의 80%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 4개 사 취합 자료에서도 작년 3분기까지 상위 10%의 가입자가 비급여 지급 보험금의 62.8%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정부안은 급여 진료에서 일반·중증 환자를 구분해 자기 부담률을 차등화하고, 일반환자의 급여 진료비의 경우, 건보 본인부담률과 실손보험 자기 부담률을 동일하게 하기로 했다.
또 5세대 실손 초기에는 중증 비급여만 보장하고, 2026년 6월 이후 비급여 관리 상황을 평가한 뒤 비(非)중증을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을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증 환자나 만성 질환자는 기존처럼 보장받을 수 있고 도덕적 해이 우려가 있는 의료행위에 통제를 강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개편안이 적용되지 않는 실손보험 초기 가입자에 대한 실효성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편안은 약관 변경을 할 수 없는 초기 실손 가입자에 대해서는 보험계약을 재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2세대 일부와 3세대 상품은 재가입 주기가 15년이고 4세대는 5년이지만, 1세대와 2세대 일부 상품은 재가입 조건이 없어 기존 약관이 100세까지 이어진다.
전체 44%(1천528만건)에 이르는 초기 실손 가입자가 5세대로 넘어오지 않으면 개혁 방안의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재매입 관련 TF를 꾸려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지만, 인센티브가 크지 않으면 초기 실손 가입자가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2021년 7월 4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됐을 당시에도 1∼3세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4세대로 갈아타면 보험료를 50% 할인해주는 혜택을 운영했지만, 전환율은 미미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2세대 가입자는 자신의 보험에 대한 효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4세대 전환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며 "보험사와 계약자 간 만족할만한 보상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재매입 효과를 검증하고, 이후 필요하면 법 개정을 통해 초기 실손에도 재가입 조항을 적용하는 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안으로 "국민들의 보험료 및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와 함께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근본적인 관리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실손상품구조 개편만으로는 개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 과잉 공급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실효적 수단인 비급여 가격 규제 및 적정 진료기준 마련이 이번 발표에서 빠진 것이 아쉽다"며 "향후 실행방안에는 개별 관리 과제별 시행 시기 등 구체적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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