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트럼프의 무소불위 압박전략

연합뉴스 2025-01-09 14:00:07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특유의 '무소불위 압박전략'이 마침내 시작됐다. 아니, 이미 당선 전부터 공약으로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해왔으니 이제 시작이라기보다는 가열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하다. 멀쩡한 이웃 나라 총리를 '주지사'라고 깎아내리며 모욕을 줘 사퇴하게 만들더니 파나마운하, 그린란드 확보를 위한 무력 사용 의지까지 밝히며 노골적인 위협에 나섰다. 아직 취임도 하기 전인데 이 정도라면 트럼프 2기의 향후 4년간 얼마나 예측 불가하고 당혹스러운 일들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CG)

우리는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이런 기조를 맛봤다. 미국과 트럼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을 위협하고 적과 손을 잡으며 국제협약과 관행, 질서를 파괴하고 무시하는 외교 전략과 국정운영이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관세를 인상하며 무역전쟁에 열을 올렸고 대선 결과에도 불복해 정치·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부추겼다. 2기 행정부가 트럼프에 충성하는 강경파들로 채워지면서 1기 때보다 강경한 미국 이익 우선주의가 판을 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멕시코만(灣·Gulf of Mexico)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바꿔 부르고 보편관세를 정당화하려고 국가경제 비상사태까지 검토한다니 이런 우려가 설득력을 얻을만하다.

한국기업 미국 공장에서 테이프 커팅하는 옐런 미 재무장관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압박 전략은 벌써 상당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 압박을 받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급하게 달려가 트럼프를 만났고 트럼프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는 그를 만나려는 정치인, 기업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방위비 인상 압박을 받는 유럽이나 관세인상 협박을 받는 중국도 노골적인 맞대응을 자제한 채 숨죽이며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미국에 대형 제철소 건설을 검토하는 현대제철을 비롯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의 업계가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트럼프 관세 폭탄'을 피하려 하고 있다. 해외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기지가 늘면 막대한 일자리 창출과 역내 생산 확대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 미국 투자계획 발표행사 참석한 주미대사

하지만 트럼프 2기에 맞선 대응은 신중하면서도 정교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트럼프 정책 기조가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면서 수시로 급변하기도 하는 특성이 있는 데다 언제 어떤 역효과와 부작용을 불러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저금리를 선호하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도 금리인하를 압박하지만, 오히려 트럼프 정책효과로 20년물 국채금리가 연 5%를 넘어서는 등 금리가 오르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이제 열흘 뒤면 전 세계는 또다시 시작될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과 맞서싸워야 한다. 우리 정치는 계엄선포 사태와 탄핵정국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경제와 외교, 그리고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서 불어오는 거센 풍랑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