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농담이 아니었네"…불안 휩싸인 그린란드 주민들

연합뉴스 2025-01-09 12:00:21

"우린 부동산 아닌데…상황 무섭게 돌아가" 복지혜택 상실 우려까지

일부는 덴마크서 독립 원해…'마가' 모자 쓰고 트럼프 장남 환영도

도널트 트럼프 주니어가 탄 전용기가 7일(현지시간) 그린란드 수도에 도착하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무력으로 점령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이후 그린란드 주민들이 당혹감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주민 중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를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린란드 원주민이자 라디오 프로듀서인 크리스티안 울로리악 제페센은 "모든 것이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고 걱정을 표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첫 대통령 임기 때인 2019년 그린란드 섬을 매입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린란드와 덴마크 국민 대부분은 트럼프의 제안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모두가 '하하, 나라를 그냥 살 수는 없어. 그는 진심이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잘못된 일었다면서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덴마크 대사 발탁 소식을 전하면서 "국가 안보와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은 그린란드의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그린란드 통제권 확보를 위해 군사적 조치를 배제할 것이냐는 질문에 "확언할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까지 '관광' 목적을 내세워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하자 그린란드 현지에서는 트럼프의 진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작은 마을인 콰코르토크에 사는 간호사 아비아아자 샌드그렌은 그린란드가 미국에 속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혜택을 잃게 될 것이다. 무료 교육, 교육 보조금, 무료 의료 서비스, 무료 의료 혜택을 받고 있고, 그린란드에서는 모든 것이 무료"라며 "미국엔 그런 게 없다는 걸 안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의회에서 그린란드를 대표하는 두 명의 의원 중 한명인 아자 켐니츠는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린란드의 독립운동을 부추기려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는 덴마크와 미국 간 게임에서 '졸'이 될 위험이 있다"며 우려했다. 이어 과거 유엔에서 일하느라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미국의 시스템을 봤는데 그것이 평등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

제페센도 "그린란드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나라"라며 "누가 살 수 있는 부동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린란드에서 현지인과 사진 촬영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북극해에 있는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북극 지역에서 해운, 에너지, 천연자원, 군사 차원에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도 계속 커지고 있다.

300년간 덴마크의 지배를 받던 그린란드는 1953년 덴마크에 공식 편입돼 2009년부터는 외교·국방을 제외한 모든 정책 결정에 대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덴마크와 언어도 문화도 인종도 다른 그린란드 내부에는 독립을 열망하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참에 초강대국인 미국과 손을 잡자는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주니어의 누크 방문 당시에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그린란드 일간 세르미치악은 일부 현지인들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의 구호이자 트럼프 지지층을 통칭하는 용어) 모자를 쓰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트럼프 주니어에 대한 따뜻하지만 절제된 환영"이라고 보도했다.

그린란드 주민 옌스 오스터만은 "그린란드는 부유한 나라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강대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앞서 신년사에서 "세계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소위 식민주의의 족쇄라고 할 수 있는 협력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전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독립 여부는 전적으로 그린란드인의 의사에 달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린란드는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withwi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