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에 딸 호원숙 작가가 찾은 미출간 원고 다섯편 수록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어머니의 여행 가방에는 아직도 빨간 크리스마스 리본이 달려 있다. 평범한 캐리어이지만, 그걸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 미소가 나온다. 어머니가 어딘가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신 게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 것치고 어머니는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기에."
박완서(1931∼2011)의 맏딸인 작가 호원숙은 어머니가 남긴 여행 가방을 보면서 느낀 감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출간된 어머니 박완서의 산문집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의 서문에서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된 박완서의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에 작가 사후 추가로 발견된 미출간 원고 다섯 편을 묶었다.
호원숙은 "이번 산문집에 새롭게 들어간 글 다섯 편은 모두 우연히 발견했다"며 "어머니가 스크랩해놓은 이 글들은 마치 '이런 글도 있었단다' 하며 어머니가 내게 건네주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새로 발견된 수필들은 백두산 여행기인 '천지, 소천지, 그리고 어랑촌 가는 길'과 남한산성에서 느낀 감상을 담은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 등이다.
'어린 시절, 7월의 뱀장어'는 저자가 유년 시절 시골 마을에 갔을 때 숙부가 잡아서 구워준 뱀장어를 먹은 추억이 담겼고,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은 소박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다뤘다.
'미망에서 비롯된 것들'은 박완서가 대하소설 '미망'을 집필할 당시 쓴 것으로,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된 개인적인 경험과 긴 호흡의 서사를 풀어낸 소회를 털어놨다.
'미망'은 19세기 개성 지방 거상의 손녀로 태어난 주인공이 일제강점기 민족자본가로 성장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박완서는 어린 시절 우연히 숙모가 숙부에게 들려준 옛이야기를 오랫동안 잊지 못하다가 그 이야기를 기둥으로 삼고 무수한 곁가지를 키워 '미망'을 썼다고 돌아봤다.
"너무 오래 가지를 키웠나보다. 장장 오천 장이 넘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요새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미망'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대부분의 내 소설은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문학동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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