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맞아 관광도시로 도약 꿈꿔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일본 3대 도시 나고야가 있는 혼슈 중부(中部)지역의 아이치현은 한국인에게 인기 관광지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치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센고쿠(戰國) 시대를 주름잡던 인물들을 배출한 중심지였다.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관광 자원을 산업화하지 않았던 탓이다.
알고 보면 아이치는 수많은 관광 자원이 있는 '숨은 보석'과 같은 곳이다.
◇ '아이치 프라이드'
첫 방문지는 나고야성이다.
나고야성은 센고쿠 시대 중심이 됐던 나고야의 위상을 보여주듯 웅장했다.
성 내부의 장식도 무척이나 화려하고 이채로웠다.
또 지위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
성벽을 쌓는 데 쓰였던 돌에도 작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각 지역 다이묘(大名)의 문양이라고 한다.
다이묘는 영지(領地)를 소유한 각 지역의 봉건 영주를 말한다.
나고야가 있는 아이치현으로 간다고 하니, 누군가가 그곳은 대전 같은 곳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나고야는 대전과 비슷한 면이 있다.
엑스포를 개최한 이력이 있다는 것과, 대표적인 '노잼도시'로 알려진 것도 비슷했다.
그러나 실제 접한 나고야는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볼 것과 먹을 것, 즐길 것들이 널려있었다.
나고야는 교토와 에도(도쿄)를 잇는 중심지였으며, 동서 일본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예로부터 바다와 가까워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다.
오늘날 나고야를 있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1600년 발생한 세키가하라 전투다.
일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가운데 하나며, 당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센고쿠 시대를 마무리해 오늘날 일본의 기초를 닦은 계기가 됐다.
이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이 맞붙었는데, 동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서군에는 임진왜란에서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도 참전했다.
그는 이후 처형됐다.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센고쿠 시대에 활약한 3명의 인물이 모두 이 아이치 지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랍다.
일본을 통일시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이치현의 오카자키에서 태어났다.
오다 노부나가는 아이치현 서부인 오와리번 출신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또한 오와리번 출생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센고쿠 시대의 혼란을 종식하면서 축조한 것이 나고야성이다.
가토 기요마사 등 20명의 다이묘가 축조에 힘을 보탰다.
1610년 성을 쌓기 시작해 2년 만에 완공했다.
나고야는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고, 260년간 지속된 에도 막부의 기틀이 됐다.
◇ 단풍과 벚꽃이 함께 피는 초현실적 풍경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그의 표현을 흉내 내자면, 인천공항의 폭설을 빠져나가 도착한 곳은 단풍국이었다.
한일 양국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기후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은 겨울이었지만, 일본은 가을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도요타시에서 만난 벚꽃과 단풍의 조화였다.
도요타시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본거지다.
이곳에는 매년 늦가을이면 단풍과 함께 벚꽃이 활짝 피는 초자연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 시키(四季)자쿠라라는 벚꽃 덕분이다.
일본에서 시키자쿠라를 가끔 한두그루씩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군락을 이룬 모습을 접한 것은 처음이다.
시키자쿠라의 대규모 군락지는 일본 전역에서 이곳 뿐이다.
도요타시에는 모두 2만본의 시키자쿠라가 자생하고 있다.
시카자쿠라 군락지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아이치현 차원에서 관광 자원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선 나고야 시내에서 찾아가기가 까다롭다.
나고야 시내에서 도요타로 가는 전철을 탄 뒤 버스 편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키자쿠라 군락지까지는 다시 셔틀버스로 옮겨 타고 가야 한다.
◇ 아이치의 숨은 비경 고란케이
고란케이는 도요타시 이모리 산에서 도모에 강까지 이어지는 협곡이다.
이곳은 나뭇잎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절경을 보여준다.
이 협곡의 단풍은 에도시대 한 승려가 심은 것이라 한다.
약 4천 그루의 단풍나무가 물들어 있는 일본 최고의 단풍 명소 중 하나다.
이곳에 있는 단풍나무는 모두 11종이다. 특히 향적사(香積寺) 아래쪽 단풍이 압권이다.
계곡 옆으로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협곡을 바라보며 다과를 즐기는 모습이 무척 여유롭게 보였다.
고란케이를 둘러본 뒤 오바란이란 이름의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지역에서 나는 산나물을 중심으로 한 약선요리가 매력적인 곳이다.
메뉴 하나하나 디테일이 살아있다.
곤약, 유자 맛 된장, 토란 줄기 조림, 으깬 콩이 들어간 국 등 모든 메뉴에서 재료의 신선한 맛이 잘 살아있었다.
무척이나 신경을 써 요리를 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의 또 다른 장점은 이색적인 식당 내부다.
널따란 창고형 건물의 마룻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숙소는 오카자키시 산골에 있는 우드 디자인 파크였다.
글램핑 시설과 계곡 옆 사우나 시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야외 바비큐도 맛볼 수 있다.
◇ 국보 천수각이 있는 이누야마
아이치현 북부에 있는 이누야마시는 빠뜨리면 아쉬운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인은 물론, 도쿄 사람들도 잘 모르는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누야마에는 국보인 이누야마 성이 있다.
기후현과 아이치현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기소강변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성은 센코쿠시대 3명의 주요 인물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이누야마 성은 오다 노부나가의 삼촌인 오다 노부야스가 1537년에 완공한 성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수각이 있는 곳이다.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때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입성한 적도 있다.
아침부터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이 줄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가끔 인증사진을 촬영하러 기모노 차림으로 올라오는 내외국인들을 마주칠 수 있다.
30여분 줄을 서서 성 입구에 도착했는데 성은 올라가기가 꽤 힘들다.
계단이 가팔라지기 때문에 기어오르듯 올라야 한다.
올라가니 마침 석양이다.
최상단에는 사방을 전망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돼 있다.
석양에 물든 기소강과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빨리 사진을 찍고 네 모퉁이를 돌고 서둘러 나와야 한다.
이점이 다소 아쉬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성의 별칭이다.
백제성(白帝城)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지의 유비가 죽은 바로 그 백제성에서 유래했다.
이누야마 성 인근에는 국보 다실(茶室)로 선정된 유라쿠엔 정원(有樂苑)이 있다.
일본 특유의 절제미가 느껴지는 정원이다.
이누야마 성 아래에는 성하(城下)마을인 '이누야마조카마치'가 형성돼 있는데, 인근 기후현의 유명한 다카야마 거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거리를 다니면서 꼬치 요리 등을 사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성하 마을 거리에서는 이누야마 성이 올려다보인다.
◇ 수백 년 전통의 양조장 그리고 장어요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센고쿠 시대 종식은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에 많은 번성을 가져왔다.
식문화의 발달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고야 공항 인근 한다시의 이토고시(伊東合資) 양조장은 에도 시대 문을 열어온 술도가다.
200년 역사를 가진 이 술도가는 지난 2000년 문을 닫고 말았지만 이토 가문의 9대손인 이토 유우 씨가 최근 이곳을 부활시켰다.
이곳에서는 주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거대한 주조공장 건물들이 서 있는 가운데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는 트렌디한 식당이 자리 잡았다.
사케가 들어간 전채요리 등을 맛볼 수도 있다.
메뉴의 모든 식재료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어서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멋진 소나무가 자리 잡은 옛 기와 건물이 눈에 띈다.
이토 씨는 이 건물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반드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문을 나섰다.
나고야의 대표 먹거리는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다.
대표적인 히츠마부시 노포 우나토요를 찾았다.
가게 입구에서부터 연륜이 느껴진다.
폴리카보네이트 창문 너머로 주방 모습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숯불로 장어를 굽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본 요리 예능 프로그램 '고독한 미식가' 특집 편에 나온 곳이라고 한다.
기름이 자르르한 쌀밥 위에 얹힌 장어가 빛났다.
일본 전역에서 맛볼 수 있는 장어덮밥이지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칠맛이 있었다.
◇ 아리마츠 시보리
일본 각 지역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염색 문화가 있다.
나고야시와 도요타시 중간쯤에 있는 아리마츠 지역에는 '아리마츠 시보리'라는 이름의 염색이 있다.
원래 규슈지역의 염색법이었지만 나고야성 축조를 계기로 이곳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나고야성 축조를 위해 각 다이묘는 인부들을 파견했는데, 당시 규슈지역의 인부들은 염색된 수건을 썼다.
특별한 염색 방법이 발달하지 않던 때라 이것이 획기적인 아이템이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아리마츠 지역은 8가구 밖에 없을 정도로 한적한 마을이었다.
청년들이 모여 이 염색법을 배워 수건을 팔기 시작했다.
에도(도쿄)에서 교토까지 이어지는 국도 1호선 '도카이도'(東海道) 길목에 있었던 점이 성공의 열쇠였다.
염색업은 더욱 발달해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아리마츠 지역을 방문하면 가게마다 내려오는 전통 염색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지시에 따라 해보니 이쁜 무늬가 천에 묻어났다. 맑은 물에 씻어 말리니 품격 있는 수건이 됐다.
◇ 빼놓을 수 없는 나고야 즐길 거리 그리고 아시안게임 경기장
나고야 시내의 '원더 나고야 샤부샤부'는 샤부샤부를 먹으며 닌자 쇼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복면을 한 3명의 출연자는 닌자들의 주 무기인 표창과 단검 등을 활용한 묘기를 선보인다.
나고야 시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는 '세카이노야마찬'이라는 선술집이다. 2시간 동안 술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나고야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일본 전역으로 퍼질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나고야시 근교에는 기린 맥주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단돈 500엔만 내면 맥주 공장을 둘러보고 다양한 맥주 시음도 할 수 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식도락과 쇼핑에 관심이 많다면 시내의 사찰 오스칸논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오스칸논 주변에 형성된 시장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경기 등을 직관하는 여행 상품도 부쩍 많이 늘었다.
특히 요즘 스포츠 마니아들은 아무리 경비가 비싸더라도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나고야 시내를 비롯해, 아이치현에서는 2026년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나고야와 아이치현은 아시안게임 경기 관람을 계기로 관광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참관을 위해 찾은 주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는 힘찬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