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아닌 동물도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는 인식이 두루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동물권이나 동물 복지와 같은 용어도 자연스럽게 사용되지만, 이는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960년 무렵에는 인간과 나머지 동물은 확연하게 구분된 존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당시에는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인격이나 마음이 없다고 여겨졌으며 실험을 위해 좁은 철창에 홀로 감금되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과 침팬지의 DNA 정보가 1%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등 침팬지를 보는 인류의 시선에 큰 변화가 생겼다.
침팬지에 대한 인식을 확장한 대표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91) 박사의 침팬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창문 너머로'(사이언스북스)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1960년 구달이 아프리카 국가 탄자니아 서부의 곰베 지역에서 야생 상태의 침팬지 연구에 뛰어들면서 인간과 놀라울 만큼 비슷한 면모를 지닌 이 영장류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해 10월 구달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고 이름 붙인 침팬지가 풀 줄기를 다듬어 흙집에 찔러 넣은 뒤 흰개미를 낚시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서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에 관한 보고서를 받은 루이스 리키 박사가 "이제 도구를 재정의하고 인간을 재정의하지 않으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고 회신할 정도였다.
인간의 집에서 자란 침팬지 루시(1964∼1987)는 냉장고와 찬장에서 술병과 유리잔을 꺼내 직접 진토닉을 만들고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기도 하고 수어로 간단한 의사를 표현하기도 해서 구달을 놀라게 한다.
구달 박사는 태어난 지 몇 시간 후에 목격한 어린 수컷 침팬지 '고블린'이 17년이 흐른 뒤 무리에서 우두머리로 거듭나는 과정을 비롯해 여러 개체의 변화를 책에서 생생하게 소개한다.
구달의 연구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는 첫 논문을 발표할 때 침팬지를 '그' 혹은 '그녀'라고 표현하는 대신 '그것'으로 수정하라는 편집위원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침팬지를 성별과 본성이 있는 존재로 격상시켰다.
연구를 거듭하던 구달 박사는 침팬지의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가 곰베에 처음 발을 들였던 1960년에는 침팬지의 서식지가 멀리까지 뻗어 있었고 많을 때는 탄자니아에 1만 마리의 침팬지가 존재하기도 했으나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90년 무렵에는 2천500마리도 안 되게 감소한다. 호기심에 어린 개체를 무책임하게 들여와 키우다가 버리거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비롯한 질병 연구를 위해 생체 실험을 하는 등 침팬지가 인간에 의해 고통받거나 희생되는 사례에 구달 박사는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는 침팬지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기쁨과 재미를 느끼며 두려움, 슬픔, 고통을 느낄 줄 안다며 동료 인간에게 하는 것처럼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대하자고 외친다. 저자는 침팬지를 매개로 한 인식의 변화가 지구상의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침팬지에 대한 이해가 다른 비인간 동물 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지기를, 우리가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는 다른 종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기를 희망하자."
이민아 옮김.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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