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속빈 강정' 만든 반값 대학등록금의 역설

연합뉴스 2025-01-08 08:00:08

박근혜, 첫 반값등록금 공약…무상복지 경쟁에 불 붙여

박원순, 시립대 100만원대 등록금 관철…국민의힘 환원 시도

강남 개 유치원보다 싼 사립대 등록금, 현실화하되 서민 배려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반값 등록금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만들어낸 제도다. 노무현 정부가 외환위기로 인해 동결된 대학 등록금 인상에 나서자 한나라당 박근혜 지도부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값 등록금 공약을 꺼내 들었다. 등록금 인하를 제안하고 밀어붙인 사람은 지금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었다.

한나라당이 반값 공약으로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재미를 보자 야당인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내건 더 화끈한 공약으로 맞불을 놨다. 공짜 급식·보육·의료에 반값 등록금을 넣은 '3+1 무상복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은 노인 기초연금과 누리과정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을 파고들었다.

박근혜 "등록금 부담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하듯 복지 공약을 쏟아내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립대에 반값 등록금을 도입한 데 이어 시립대 등록금 전액 면제를 추진하겠다고 나서 포퓰리즘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중산층과 지방 출신 학생 비율이 높은 시립대를 왜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이 거셌지만, 박 시장은 기어코 자기 뜻을 관철했다.

박원순 시장 덕분에 시립대 학생들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10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내고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입학 성적은 그대로이고 지방 출신 비율도 여전히 높다. 그러자 여당이 된 국민의힘에선 시립대가 서울의 서민 가구에 도움이 되긴커녕 최저 등록금에 편승한 최상위권 명문대 재수의 통로로 전락했다며 국립대의 반값 수준으로 등록금의 원상 복구를 시도하고 나섰다.

시립대 다음으로 등록금이 싼 지방 국립대의 경우 입시 성적 향상은 고사하고 학령인구 급감과 '인서울' 바람 속에서 생존 위기에 몰려 있다. 등록금이 성적과 연동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방증인 셈이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유지 촉구하는 진보당 학생들

.최근 서강대가 등록금을 올린 데 이어 연세대와 성균관대, 경희대 등 서울의 주요 사립대들이 등록금 인상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학의 유일한 수입원이라 할 등록금 동결이 10여년째 이어지면서 재정난과 교직원들의 불만이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강남 반려견 유치원보다 싸다"는 현재의 등록금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다 보니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부유한 중국 학생들이 미국으로 향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 재정난 타개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등록금 현실화를 모색할 때가 됐다. 다만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등록금에 차등을 두거나 장학금을 저소득층 학생에게 몰아주는 등 서민을 배려하는 대안을 동시에 강구해야 할 것이다. 표 계산에 매몰돼 대학교육 황폐화의 원인을 제공한 정치권의 각성도 필요하다. 이제라도 최소한의 책임 의식을 보여줬으면 한다.

등록금 인상 반대하는 대학생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