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국적 재조사 요구는 거부 "이미 조사해…권고 이행해야"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영국에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 대응에 실패했다고 공세를 퍼부은 이후 영국 노동당 정부가 관련 직종 종사자의 미성년자 성범죄 신고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7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베트 쿠퍼 내무장관은 "올해 봄 발의할 '범죄치안법안'에 아동 성학대를 신고하지 않거나 은폐하면 직업적, 형사적 제재를 받는 내용을 포함하겠다"고 전날 하원에서 밝혔다.
쿠퍼 장관은 이는 2022년 나온 미성년자 성학대 독립조사(IICSA) 보고서에 담긴 권고 사항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에는 미성년자를 담당하거나 신뢰받는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동 성학대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권고안이 들어 있다.
제1야당 보수당의 크리스 필립 예비내각 내무장관은 이런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최근 논란이 된 미성년자 그루밍(길들이기) 조직범죄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공 조사에 착수하라고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쿠퍼 장관은 그러나 신규 조사는 거부했다. 노동당 정부는 전임 보수당 정부가 IICSA 권고사항도 지키지 않았다며 그 이행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이다.
10여년 전 미성년자 그루밍 성착취 사태를 둘러싼 논쟁은 머스크의 잇단 엑스(X·옛 트위터) 게시물 이후 영국에서 재점화했다.
머스크는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노동당 정부가 거부했다고 맹비난했으며 당시 왕립검찰청(CPS) 청장이었던 키어 스타머 총리가 사건을 덮었다고도 주장했다.
이후 보수당과 영국개혁당 등 보수 야당은 전국적 조사를 촉구했고, 스타머 총리는 이에 "부화뇌동한다"며 야당을 비판하는 등 정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영국 언론에 따르면 로더럼, 로치데일, 올덤 등 곳곳의 범죄 조직이 장기간 10대 소녀 다수를 그루밍 수법으로 성착취한 사건은 2010년대 초반 잇달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동 전문가 알렉시스 제이 스트래스클라이드대 교수가 이끄는 독립 조사 위원회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로더럼에서만 1997∼2013년 1천400여 명이 성착취를 당했다.
이후 경찰이나 사회복지 서비스 등 지역 기관의 대응 실패로 수사나 기소가 되지 않은 사례가 상당수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범인 대다수가 파키스탄계인 사건의 경우 인종 문제가 당국의 미온적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5∼2022년 IICSA를 이끌었던 알렉시스 제이 스트래스클라이드대 교수는 7일 B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머스크발 정치적 논쟁으로 "이 의제로 관심이 모이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을 평가하면서도 "조사, 협의, 논의는 충분히 했다. 추가 조사의 때는 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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