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계룡백일주를 아시나요?

연합뉴스 2025-01-08 00:00:29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산의 울림'(116.7 X 91.0cm Acrylic on Canvas 2023)

'계룡산 화가'로 잘 알려진 신현국 화백은 우리나라 명산인 계룡산 아래에 작업실을 마련해 60여년간 계룡산의 사계절을 그려온 작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산의 울림'(Echo of the Mountain)은 수십년간 일관되게 그려온 계룡산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별한 회화방식에 연연하지 않고 정성 어린 땀과 열정, 도전정신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계룡산을 그려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신 화백이 고향인 충남 예산군에 '산의 울림'을 기증하기도 했다.

신현국 화백 '산의 울림' 기증식

계룡산 남쪽은 조선시대 초기에 새로운 도읍지의 후보였을 뿐만 아니라 정감록(鄭鑑錄·조선시대 도참서로 저자나 성립 시기는 분명치 않음)에 수록된 정씨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는다는 전설로 소규모 종교단체가 오랫동안 난립한 곳이다.

계룡산은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영험한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무속인들이 항상 모여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계룡산

계룡이라는 이름으로 또 유명한 것이 있으니 400년 전통의 '계룡백일주'(鷄龍百日酒)다. 조선시대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인 충정공 이귀(李貴)는 그 공을 인정받아 임금으로부터 여러 가지 선물을 하사받았다.

그중 하나가 궁중의 술 '백일주'를 빚는 방법이 담겨있는 문서인 주방문(酒方文)이었으며 이귀의 부인이 주방문에 나온 내용을 보며 술을 빚었다. 그런데 그 맛이 궁중의 술 '백일주'보다도 더 좋아 역으로 임금에게 진상해 이술이 연안 이씨 '백일주'가 됐다고 한다.

이후 연안 이씨 집안은 대대로 백일주를 제조하며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그 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니 그 역사가 얼추 400년인 것이다.

계룡백일주는 계룡산 주변, 공주 일원의 솔잎, 진달래꽃, 국화꽃 등 자연을 머금고 있는 술이다. 이 술을 빚기 위해서는 봄에는 진달래꽃을 따다 말리고, 가을에는 국화꽃을 따다 말려야 한다. 그것도 1년간 쓸 수 있는 분량을 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공주서 계룡백일주 제조과정 공개

백일주를 만들 때 누룩은 찹쌀가루를 사용해 만든다. 통밀과 찹쌀을 똑같은 분량으로 섞어 거칠게 빻아낸 뒤 물과 섞어 반죽한다. 누룩 틀에 담아 띄우는 기간은 여름철은 두 달, 겨울철은 석 달이 걸린다. 그런 다음 2∼3일에 한 번씩 뒤집어 줘야 누룩이 제대로 뜬다.

이후 밑술이 발효되는 데 30일, 본 술을 빚은 날부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또 70일 걸린다. 본 술을 빚을 때 백일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게 되는 국화꽃, 진달래꽃, 솔잎, 오미자 등의 온갖 재료가 들어간다.

백일주의 최종 완성은 창호지를 이용한 걸러내기 과정이다. 100일 동안의 세월이 녹아 있는 술은 언뜻 보면 맑고 깨끗한 것 같지만 앙금이나 찌꺼기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소쿠리에 창호지를 받쳐 걸러줬으나 요즘은 기계의 힘을 빌린다.

(위) 계룡백일주 16도, (아래) 계룡백일주 30도·40도

백일주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16도짜리 '약주'다. 찹쌀, 누룩, 재래종 국화꽃, 오미자, 홍화, 진달래, 솔잎 등을 재료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 숙성시켜 만든 약주로서의 계룡백일주가 있다. 이 술은 약주임을 강조하다 보니 '신선이 마시는 술' 또는 '마시면 신선 같은 기분이 드는 술'을 뜻하는 '신선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40도짜리 소주로서의 계룡백일주다. 약주를 증류시킨 뒤 벌꿀을 넣어 만든다. 이 소주를 옛날에는 '백일소주'라고 불렀다. 독한 편이지만 솔잎과 국화꽃 등의 은은한 향이 있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요즘에는 도수를 조금 낮춘 30도짜리 소주도 나온다.

故 지복남 명인과 그의 아들 이성우 명인

백일주는 이귀의 14대손인 이황 씨의 부인 지복남 명인이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술 이름도 그동안에는 그냥 '백일주'라 불렸는데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충남 도지사인 심대평 도지사가 이렇게 귀한 술에 이름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계룡산에서 이름을 따서 '계룡백일주'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94년에는 지 명인이 '전통식품 명인 제4호'로 지정됐지만 이후 2008년 작고 후 그 아들이자 15대손인 이성우 명인이 계룡백일주를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식품 분야 식품명인 지정

증류주는 유통기한이 사실상 없기에 위스키 시장을 대체하기에 좋다고 생각한 이 명인은 꾸준히 고급술 시장을 개척해 계룡백일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현재 어머니 때부터 빚은 20년산 계룡백일주를 시판하고 있고 올해는 25년산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선조 명문가에서 이어온 방법 그대로 후손이 계승하고 있는 가양주이자 전통주 계룡백일주는 이처럼 K-리큐르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