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의 죽음·호랑이와 다람쥐…화가 채용신이 남긴 그림들

연합뉴스 2025-01-08 00:00:22

국립전주박물관, '채용신과 근대' 전시…'정몽주순절도' 등 첫 공개

채용신 '정자관을 쓴 선비 초상'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흰 천에 가장자리를 검은 비단으로 두른 옷을 입은 남성이 두 손을 모은 채 바르게 앉아 있다.

선비들이 평상시 머리에 쓰던 정자관(程子冠)까지 착용한 모습이다.

눈가에 진 주름, 길게 늘어진 흰 수염 하나하나가 생생해 마치 사진을 연상시킨다. 초상화가로 이름 높았던 채용신(1850∼1941)이 1928년 완성한 어느 선비의 얼굴이다.

초상화는 물론 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다양한 회화 작품으로 주목받은 채용신의 활동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상설전시관 2층 '전주와 조선왕실' 전시실에서 '채용신과 근대' 전시를 선보인다고 7일 밝혔다.

채용신은 고종 어진(御眞·임금 초상화)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세기 초 고향으로 돌아와 익산에서 금마산방(1906∼1923)을 운영했고, 1926년 이후에는 정읍에서 채석강도화소를 세워 다양한 그림을 남겼다.

전시는 채용신이 남긴 작품 8건 27점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다.

채용신, '정몽주의 순절'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은 고려시대 문인 정몽주(1338∼1392)가 철퇴를 맞고 선죽교 위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장면을 묘사한 '정몽주순절도'(鄭夢周殉節圖)다.

정몽주가 타고 왔던 갈색 말이 도망가는 장면, 하인들이 놀라워하는 표정, 송도(지금의 개성) 성곽 모습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 작품은 2023년 박물관이 새로 확보한 소장품으로, 처음으로 공개된다.

채용신, '호랑이와 다람쥐'

한밤중의 호랑이와 다람쥐 모습을 그린 그림은 1906년 정산군수에서 물러나 김제 일대에서 그림을 그린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림 상단에는 전북 선비인 이정직(1841∼1910)이 쓴 글이 있어 채용신과 이정직, 이정직의 제자 송기면(1882∼1956) 사이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 그림 또한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처음 선보인다.

채용신, '화조영모8폭병풍'

전시에서는 근대적 공방을 운영하면서 주문자가 요구하는 내용에 따라 소재와 배경을 변형하기도 한 채용신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꽃과 새, 각종 동물을 그린 8폭 병풍에는 어미젖을 빨고 있는 강아지, 풀꽃을 뜯어먹는 토끼, 작은 벌레를 바라보는 공작 등 독특한 도상이 담겨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박물관 관계자는 "20세기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공방을 차려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다양한 그림을 제작한 채용신의 모습을 살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전시실 모습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