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황망한 죽음'은 맞는 표현일까

연합뉴스 2025-01-07 07:00:11

'당황하고 허둥지둥' 뜻…'죽음' 수식할 땐 '허망하다'가 적절

국립국어원 "어색하나 '쓰지 말라' 단정적 말하긴 어려워"

계속되는 여객기 참사 추모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황망한 죽음, 황망한 사고, 황망한 표정, 황망한 마음….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를 비롯해 비극적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죽음·참사와 관련해 이러한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는 '황망한'은 대략 '어이없고 허망하며 너무나 안타까운 슬픔과 마음 아픔'을 뜻하는 것으로 이심전심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형용사 '황망하다'의 어색한 용례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황망하다'는 '마음이 몹시 급해 당황하고 허둥지둥하는 면이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슬픔을 담았다기보다는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의미의 '경황이 없다'는 표현과 같은 부류인 셈이다.

사전에 기재된 용례로는 '그는 약속 시간에 늦어 황망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는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황망해하며 어색한 인사를 했다' 등이 있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인 만큼 뒤에 따라오는 명사가 사람 혹은 동물일 때 자연스럽다.

가족을 잃은 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느라 분주하다면 '황망한 유가족' 또는 '황망한 중에 뒤늦게 부고를 알리게 됐다' 등의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의 죽음을 향한 허무하고 원통한 마음을 나타낼 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7일 "'죽음'을 수식할 때는 형용사 '허망하다'가 더 적절하다"고 밝혔다.

'허망하다'는 '어이없고 허무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사전에 기재된 용례로는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큰 재산과 권력도 허망하다' 등이 있다.

앞서 2023년 8월 국립국어원은 '황망한 죽음'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묻는 온라인 게시판 질의에 "'황망하다'는 '죽음'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쓰이지 않는다"고 답변한 바 있다.

"'황망한 죽음'은 어색해요"

어색한 용례지만 '황망한 죽음'이라는 표현은 갈수록 널리 사용되는 추세다.

'황량함'+'허망함', '황당함'+'허망함'과 같은 상태를 일컬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깊은 슬픔이 몰려왔을 때 느껴지는 충격과 허무함, 당황스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실어나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황망한 죽음'이라는 구절이 사용된 언론 기사는 최근 5년(2020∼2024년)간 283건으로, 10년 전 동기(29건) 1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언어의 용례도 달라져 온 만큼 '황망하다'에도 이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1월 한 누리꾼은 국립국어원 온라인 게시판에 "뜻을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만큼 뜻풀이를 추가하는 게 어떤가?"라고 주장했다.

이 작성자는 '황망'(慌忙)을 구성하는 한자어 중 '바쁠 망'(忙) 대신 '망령될 망'(妄)을 적용한 뜻풀이를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망령될 망'은 '허망'을 구성하는 한자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사전적 뜻풀이에 기댄다면 '황망한 죽음'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지만, 국립국어원은 언어의 변화를 논의하며 뜻풀이를 고쳐나가기 때문에 '쓰지 말아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새로운 뜻풀이를 추가하거나 새로운 서술어를 만드는 것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덧붙였다.

win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