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당국자 "더 많은 대만인이 中국적 갖게 되면 관할권 침해될 것"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중국이 대만인을 대상으로 본토 신분증 발급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만이 중국의 국내 문제 개입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FT는 대만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 중국이 본토 방문 대만인들을 상대로 '3개 문서'로 불리는 중국 거주증, 은행 계좌, 현지 휴대전화 번호를 신청하도록 유도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대만인이 중국 거주증을 받거나 심지어는 중국 시민을 위한 신분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인이 중국 거주증을 받는다고 중국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만 당국은 거주증이 중국 국적 취득으로 향하는 진입 경로로 보고 있다. 또한 대만인이 중국 신분증을 받을 경우 중국의 관할권 침해와 대만 내 문제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 안보당국 관계자는 "중국 현지 신분증은 (거주증의) 바로 다음 단계이거나 거주증 대신 곧바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만의 한 고위 당국자는 "더 많은 대만인이 중국 국적을 갖게 되면 우리 관할권이 침해될 것이 우려된다"며 "중국 신분증을 가진 대만인이 대만에서 사건에 연루될 경우 중국이 자국민 문제라며 우리 국내 문제에 개입하려 할 수 있다"고 FT에 말했다.
대만인의 중국 거주·신분증 문제는 지난달 말 한 블로거의 다큐멘터리에서 대만인 수십만명이 중국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시에서 대만 출신 청년 창업센터를 이끄는 대만인 린진청은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대만인 약 20만명이 중국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 내용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대만 정부 관계자와 대만인 관광객·사업가들은 최근 수개월 동안 중국을 방문했을 때 '3개 문서' 신청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웃 국가 시민들에게 자국 신분증을 부여하는 것은 러시아가 구사해온 전술이라고 FT는 지적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분쟁을 일으킨 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했다. 러시아는 또 조지아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주민들에게도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이는 2008년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를 빌미로 이들 지역과 조지아의 전쟁에 개입하는 구실이 됐다.
중국은 대만인들을 본토인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차원에서 2018년부터 거주증을 발급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이를 두고 중국이 대만을 일방적으로 통합하려는 통일전선 전술의 하나로 보고 있다.
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일하는 대만인은 21만7천명이다. 대만법에 따르면 중국 신분증을 소지하면 대만 호적 등록이 취소되지만 대만은 중국 내 자국민들의 행동을 모니터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도 지난 1일 신년사 후 기자회견에서 대만인의 중국 거주·신분증 취득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이 제공하는 단기 혜택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라이 총통은 대만인이 이 시기에 중국 신분증을 취득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시민으로서 어리석은 행동으로, 세상으로 가는 길을 끊는 일이 될 수 있다면서 "공짜는 결국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는 옛말이 있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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