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현실과 가상의 공존 가능성

연합뉴스 2025-01-06 13:00:26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인간 활동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가상의 가치를 사고파는 시장도 생겨났다. 시장은 성질에 따라 크게 물리적 시장과 가상적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 시장은 물건의 교환과 이동 등의 다양한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실제의 장소를 말한다.

물리적 시장은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존재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시장에 모여 물물교환 방식으로 상품을 사고팔았다. 그러다가 거래가 점점 활발해지면서 교환 수단으로 화폐가 발명되고, 상품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가능해졌다. 그 결과 각 상품에 적정한 가격이 매겨지고, 적극적인 생산과 판매를 통한 부의 축적도 일어났다.

물리적인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여러 가지 가상적 가치를 전하는 상품도 거래를 통해 실제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거래 매개체인 화폐 역시 원론적으로는 가상적 가치를 갖고 있다.

나아가 인간은 미래의 가능성과 위험도 등 시간에 기준을 둔 가상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거래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러한 가상의 가치를 거래하는 가상의 시장이 등장하고, 이것의 영향력이 실제의 물리적 시장을 훨씬 뛰어넘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시장으로 등장하게 된다.

◇ 기술과 함께 진화한 시장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가상의 가치를 사고파는 대표적인 가상 시장 중 하나가 증권거래소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인류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Amsterdamse effectenbeurs)가 생겨났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설립 당시 삽화

160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초기에는 그냥 거래소로 불리다가 훗날 건축가 헨드릭 드 카이저(Hendrick de Keyser)의 이름을 따서 '카이저 거래소'로 불렸다. 2000년에는 벨기에의 브뤼셀 증권거래소, 프랑스의 파리 증권거래소와 병합한 후 현재의 이름인 유로넥스트 암스테르담(Euronext Amsterdam)이 됐다.

1602년에 네덜란드 의회는 민간과 정부의 자본을 결합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21년간의 장기 플랜으로 운영되는 회사인 데다 회사의 미래 가치도 높다고 판단했기에 이 회사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회사의 지분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주식 거래도 자유로웠다. 투자자 모집이 끝난 이후에도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초기 투자자 중에도 가격만 적절하다면 주식을 팔겠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회사의 미래 가치, 즉 가상의 가치를 보고 주식을 사려는 사람도 계속 늘어나면서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활발하게 거래되고 그 값도 점점 올라갔다.

당시에 주식은 종이로 된 증권 증서 발행이 아닌 장부에 일일이 기록하는 방식으로 거래됐다. 주주 명부에 이름과 지분을 적고 주주가 바뀌면 회계 담당자가 주주명을 고쳤다. 증권도 자금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종이 권리 증서'의 형태였다. 이러한 17세기 주식 거래는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재와 같이 컴퓨터 전산상의 장부로 대체됐다.

인류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1801년에 세워진 영국의 런던 증권거래소 등 옛날 증권거래소는 현재의 증권거래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고전적 스타일의 빌딩에 모여 종이에 이름을 적고 서류들을 직접 교환하며 가상의 가치를 사고팔았다.

지금의 월스트리트나 여의도 증권가처럼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있는 현대적 증권거래소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의 목적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증권거래소도 현재의 증권거래소와 같이 기업의 미래 가치라는 가상의 가치를 돈으로 사고팔며 거래가 이뤄졌다.

1602년에 설립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의 현재 모습

심지어 주식, 옵션, 선도 거래, 주가조작, 배당금 등의 개념도 이미 그 시절에 나온 것들이다.

가상적 가치가 교환될 때 그것이 거래되는 물리적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상의 가치가 교환된다는 행위 그 자체다.

증권 거래 역시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앱을 활용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물리적 공간은 의미를 잃게 됐다. 물론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가상의 가치가 교환될 때 물리적인 공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의 증권 거래는 물리적 성질을 가진 실체적인 장소에서 가치 교환이라는 가상성이 동시에 중첩돼 이뤄졌다.

◇ 물리적 공간 필요 없는 가상 시장 등장의 의미

현재는 기술의 발달로 증권 거래에서 실제의 물리적 공간은 필요 없어지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내에서 존재하는 가상의 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가치를 사고파는, 완전한 가상 시장의 모습과 형태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는 이러한 가상의 시장이 더욱 활발하게 기능할 것이다. 완벽하게 구현된 메타버스의 증권거래소에서 개인을 대리해주는 아바타가 주식을 거래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이때 거래되는 주식도 현실 세계에 실존하는 기업의 주식일 수도 있고, 메타버스 공간에서 생성된 가상 기업의 주식일 수도 있다. 게다가 메타버스에서 거래된 주식은 현실 세계의 돈으로도 교환되며, 현실 세계의 부의 축적과 소비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했던 과거의 전통적 시장의 형태도 메타버스에서 활발하게 재현될 것이다. 현재의 이커머스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상품의 구매와 결제만 이뤄지는 이차원적 인터페이스다. 미래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상품을 직접 입어보고, 냄새도 맡고, 손으로 만져보는 등 과거 전통적인 시장에서 물건을 거래하던 형태가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로블록스 게임 속 구찌 매장

과거 역사 속에서 시장은 물리적 공간이 필수적이었지만,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가상적 시장이 창조됐다. 더불어 디지털 메타버스의 등장과 함께 더욱 정교하고 생생해진 가상적 시장과 과거의 물리적 시장의 형태까지 모두 구현하는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