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와 다른 아파트 크린넷 시공"…하자 판정 이끈 입주자 대표

연합뉴스 2025-01-06 07:00:13

내한용 실린더 대신 상온용 설치 확인…국토교통부, 결국 '하자 맞다' 결론

유인호 세종시의원 "해당 업체 크린넷 전수조사하고 부품 교체 요구해야"

세종시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크린넷

(세종=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2023년 1월 세종시 한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크린넷) 한 대가 고장 났다.

주민들은 불편도 불편이지만 크린넷 앞에 쌓인 쓰레기봉투가 아파트 미관을 해친다며 관리사무소에 빠른 수리를 촉구했다.

업체에 수리를 의뢰하니 부품비와 인건비를 포함해 수리비가 880만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주민이 거액의 수리비 대신 직접 수리를 제안하며 고장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고, 크린넷에 사용된 일부 부품이 시공 지침서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시공 지침서에는 쓰레기 배출 밸브에 영하 20도에서 영상 70도까지 견딜 수 있는 내한용 실린더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상온용 실린더(5∼60도)를 설치한 것이었다.

시공사에 항의하며 부품 교체를 요구했으나 업체 측은 시험을 통해 검증된 제품을 정상 시공한 것이라며 거부했다.

이에 아파트 주민들은 다시 국토교통부 하자·심사조정위원회(하심위)에 하자 여부 판단을 의뢰했고 최근 하자가 맞는다는 결론을 받아냈다.

하심위는 판정서에서 "시공된 밸브는 상온용으로, 시공 지침서에 기재된 내용(-20∼70도)에 미치지 못하는 밸브를 설치했다"며 "업체는 하자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하자 보수공사를 완료하라"고 주문했다.

크린넷 고장부터 하자 판정까지 2년의 기간이 걸린 것이다.

세종시 크린넷 하자 판정 이끈 박진호 씨

하자 판정을 받기까지는 30년 엔지니어 경력의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 박진호 씨의 역할이 컸다.

박 대표는 크린넷 고장 직후 설비를 분해한 뒤 부품 하나하나를 시공 지침서와 비교하며 하자 시공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동안 모은 각종 증거 자료만 A4용지로 수천 장이다.

반도체 소재 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가 퇴직한 만큼 크린넷 작동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는 "터무니없이 비싼 수리비에 놀라 직접 부품을 구입해 수리하려고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왔다"며 "상온용 실린더 설치가 크린넷 고장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시공 지침서와 다른 부품을 사용한 것이 명확한 만큼 하루빨리 부품을 교체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업체가 시공한 크린넷 설비가 세종시 아파트 단지 곳곳에 적지 않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 업체가 설치한 크린넷에는 하나같이 내한용 실린더가 아닌 상온용 실린더가 설치돼 언제든지 고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부품 교체 대상을 설치 완료한 지 5년 이하의 크린넷으로 한정하더라도 수백 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인호 세종시의원

세종시 크린넷 문제에 초기부터 깊은 관심을 보인 유인호 세종시의원은 시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유 의원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민들이 수년 동안 크린넷 하자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시는 그동안 개인의 문제라며 손을 놓고 있었다"며 "문제가 있는 크린넷이 몇 대인지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종시는 크린넷 설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하심위의 판단이 없는 아파트에 대해서도 시공 지침서와 다른 부품이 사용된 경우는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업체에 요구해야 한다"며 "막대한 운영비와 잦은 고장으로 크린넷이 골칫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jkh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