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리즈 주인공…"아쉬움 있지만, 중간 채점 받은 기분"
"성기훈은 양심 상징, 인생 캐릭터"…한미합작 영화 연출 계획도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001번' 프론트맨을 왜 의심조차 안 하느냐고요? 전 그게 바로 성기훈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화제작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비장한 목표를 품고 행동하지만 허점이 많고, 정의감에 불타오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기적인 면모를 보인다.
선한 의도를 갖고 있는데도 하는 행동이 답답하다 보니 시청자들의 응원보다 욕을 더 많이 먹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며 "인상 깊은 반응은 아무래도 혹평"이라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잘해야 했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는데 중간 채점 결과를 받은 느낌이라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정재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 변명하거나, 작품 의도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시즌3이 공개되면 많은 분의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성기훈이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습은 굴곡의 일부일 뿐"이라며 "바닥의 바닥까지 찍은 성기훈이 이제 어떻게 변화해서 다시 치고 올라갈지 기대해달라"고 귀띔했다.
"성기훈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에,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목적을 갖고 들어갑니다. 리더 역할을 하지만, 실패만 거듭하다가 결국 최종회에서 나락까지 가게 되죠. 이제부터는 무엇이 달라질지가 꽤 큰 재미일 겁니다."
지난 시즌에서 다소 철없고 순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성기훈은 시즌2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에서 최종 우승해 상금 456억원을 얻었지만 폐인처럼 웃음기를 잃었고, 모든 것을 잊고 해외로 떠나려고 하지만 끝내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다. 결국 직접 게임을 끝내겠다며 목숨을 걸고 다시 한번 참가자로 게임에 뛰어들기까지 한다.
맹목적인 목적을 갖고 모든 것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성기훈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이정재는 시즌1의 결말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시즌1 후반부에서 보여줬던 빨간 머리 성기훈의 모습을 토대로 시즌2의 성기훈을 발전시켰다"며 "게임이 끝난 뒤의 성기훈은 이미 그 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고 짚었다.
"제가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중에서 성기훈이 가장 안쓰러운 것 같아요. 목적을 이룬다고 해도 다시 과거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연기하면서 너무 짠하더라고요."
성기훈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시즌2의 진짜 빌런'이란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답답한 구석이 분명한 캐릭터지만, 이정재는 "답답한 구석도 있지만, 세상에 성기훈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기훈을 떠올리면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며 "양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숨기자면 숨길 수 있는 것인데, 성기훈처럼 양심에 거슬리는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고, 결국 양심이 가리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요즘 사회에는 필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정재는 "시즌1에서 성기훈이 살아남은 이유도 특유의 선함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기훈이 상금을 얻겠다는 목적으로 끝까지 게임에서 이기려고 했다면, 시즌1 후반부의 그 반전은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시즌1은 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행동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작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즌2에서도 그런 메시지가 여러 장면에서 부각됐고요. 기훈의 선한 마음이 시즌3까지 이어진다면, 시즌1에서 봤던 반전의 반전이 다시 한번 나올 수도 있는 거죠."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정재는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신세계', '관상', '암살', '신과 함께' 시리즈 등에 출연했고, 2021년 '오징어 게임'에서 주연을 맡으며 글로벌 스타로 단숨에 떠올랐다.
한국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는가 하면, '스타워즈' 시리즈 디즈니+ '애콜라이트'(The Acolyte)에서 제다이 역으로 출연했다.
인터뷰 다음 날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는 이정재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큰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라며 "'오징어 게임'은 제 인생 작품이고, 성기훈은 제 인생 캐릭터"라고 애정을 나타냈다.
이어 "제 출연료와 관련해서도 말이 많은데, 제가 미국 에이전시를 통해 요구한 것은 단 하나"라며 "넷플릭스도, 우리 회사도 서로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무난한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되짚었다.
"안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 성공했다고 이래?'라는 말을 정말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최근에는 영화 '헌트'(2022)의 제작과 연출을 맡아 감독으로도 데뷔한 이정재는 현재 새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황동혁 감독님이 '오징어 게임'을 만들면서 치아가 여섯개 빠졌다고 했는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건강 챙기면서 연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새 작품은 한미합작 영화로 개발하려고 계속 이야기하는 중인데, 가능한 한 빨리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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