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 ⑨ "근로자 아닌 골프장캐디·필라테스강사…도움 못드릴때 힘들죠"

연합뉴스 2025-01-05 09:00:08

노조없는 미조직 근로자 등 약자 권익지킴이 '이음센터' 양민정 노무사

"법지식 없는 일용직 많이 찾아…임금체불부터 직장내 괴롭힘까지 상담"

"부당해고라도 사직서 쓰면 입증 어려워…바로 상담해 권리찾아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해고는 구두로 순식간에 이뤄지지만 사직서를 한 번 써버리면 남는 것은 서류입니다. 부당 해고를 입증하려면 사직서를 작성하지 말고 먼저 이음센터 등을 찾아 권리를 찾길 바랍니다."

근로자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은 노무 정보를 묻자 되돌아온 양민정(34) 씨의 답변이다. 양 씨는 평택 근로자 이음센터에서 일하는 공인노무사다.

이음센터에선 노무사가 무료 노동법률 상담과 노동법 교육 등을 제공하고 상담 결과에 따라 직업훈련이나 심리치료 등 필요한 고용·노동 서비스를 연결해준다.

이음센터는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미조직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작년 4월부터 문을 연 조직으로, 전국에 모두 6곳이 있다.

양 노무사는 바로 이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 연말 서울 사당역 인근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사회적 약자의 '권익 지킴이'로서 소회를 들어봤다.

다음은 양 노무사와의 문답.

-- 이음센터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방문하는가.

▲ 취약 근로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센터인 만큼 노동법 지식이 부족하거나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오신다. 평택의 경우 소기업·영세기업이나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고, 업종으로는 건설 일용직 근로자분들이 많이 찾는다.

-- 어떤 종류의 상담이 많이 이뤄지나.

▲ 임금 체불 사건이 가장 많다. 특히 건설 일용직 등 하청 쪽에서 임금 체불 상담이 많고, 단순 임금보다는 퇴직금 체불이 많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도 늘고 있다.

-- 건설 일용직 근로자도 퇴직금이 있나.

▲ 일용직이라고 해도 같은 현장에서 1년 이상 일하는, 사실상 상용직인 분도 많다. 다만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보통 일용직이라고 부른다. 일용직이든 상용직이든 1년 이상 일하면 똑같이 퇴직금이 발생하는데 사용주가 이를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

평택 이음센터

--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 50대 이상 근로자 다섯 분이 오셔서 퇴직금 상담을 받았는데 단순히 얼마인지 계산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직접 퇴직금 계산법을 배워가셨다. 이분들은 결국 합의가 안 돼 노동청 진정까지 갔는데, 배운 퇴직금 계산법으로 계산한 퇴직금 전액을 전부 받으셨다며 고맙다고 찾아오시기까지 했다. 보람을 느꼈다.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50대 유통업 종사자가 근로 2주 만에 해고 통보를 받고 그만뒀는데,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수당을 받지 못했다. 법적으로 줘야 하지만 오히려 사용주가 노동청에 신고하면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이분이 두려워하시더라. 노동청에 신고해도 사용주가 고소할 수 없지만, 이런 협박이 무서워 신고를 못 하고 포기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다.

-- 힘들었던 사례도 많았을 것 같다.

▲ 필라테스 강사나 골프장 캐디 같은 노무 제공자들이 찾아왔을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 이분들은 본인이 왜 퇴직금이 없는지, 휴가를 근로자처럼 쓸 수 없는지 궁금해하는데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면 납득을 잘 못하시더라. 특히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하고 싶다고도 한데 근로자가 아니니 노동청에서 신고받지 않아 도움을 드리기 힘들다.

-- 노무제공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한다고 보는가.

▲ 이분들은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니 근로기준법에 포함하기보다 노무제공자를 위한 별도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직종을 근로기준법에서 포괄할 수는 없다.

2025년부터 이음센터에서 노무사와 변호사가 함께 노무제공자 분쟁조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노동 사건은 판결까지 가기보다 중간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음센터에서 양측의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근로자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은 노무 정보는.

▲ 해고당했음에도 사직서를 쓰고 오는 분이 많다. 사직서를 한 번 써버리면 남는 것은 서류여서 부당 해고 입증이 굉장히 어렵다. 부당하게 해고당하면 사직서를 작성하지 말고 먼저 이음센터 등에서 상담받아 권리를 찾아야 한다.

매달 근로계약서와 사직서를 동시에 쓰게 하는 사업장이 생각보다 많은데 퇴직금을 줘야 하는 1년을 채우기 전에 내보내려는 의도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업장에서 근무할 경우 조심해야 한다.

-- 개선됐으면 하는 노동 관련 법이나 정책이 있나.

▲ 직장내 괴롭힘 상담이 증가하는데 법에는 신고 시 '회사가 조사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등의 의무만 명시돼있고 조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조사위원회는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특히 피해자가 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이 당사자임에도 조사 결과만 통보되고 어떤 절차 및 판단을 거쳐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공유가 안 된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납득해 억울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용을 공유하도록 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 근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일터에서 고충이 발생했을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일단 이음센터를 찾아 상담받으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평일에는 오후 8시까지, 토요일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니 언제든지 방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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