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광주 공항 등 무안공항과 유사한 콘크리트 둔덕…공항마다 제각각
짧은 활주로 탓 비상 대처 어려워…권고보다 짧은 종단안전구역도 다수
활주로 이탈방지시스템·조류 탐지 레이더도 등 안전 시스템도 국내공항에 없어
(전국종합=연합뉴스) 179명의 목숨을 앗아가 국내 발생 역대 최대피해 항공기 사고로 기록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국내 공항의 안전 대비 태세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소형공항은 비교적 활주로와 종단안전길이가 짧아 항공기가 위험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참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이 설치된 곳도 적지 않았다.
공항의 입지 조건이 철새 도래지의 특성과 겹치는데도 조류탐지 레이더가 전국에 한대도 없는 것도 문제다. 외국 공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탈 방지시스템이 국내 공항에는 전무해 공항을 세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안전한 공항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 여수·광주·포항경주공항도 '콘크리트 둔덕'…안전 시설이 안전 위협
이번 참사에서 인명피해를 키운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 설치 '콘크리트 둔덕'은 무안 공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에 따르면 항공기의 착륙을 도와주는 시설인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충돌에 대비해 쉽게 파손되는 물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항공기가 어느 방향이든 비행해 받는 경우, 쉽게 파손되고 길을 터줄 수 있어야 한다. 지지 구조물은 45kN(4.6t)을 초과하는 힘을 견뎌서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이런 규정의 취지에 비춰보면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은 법령위반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콘크리트 둔덕은 현재 무안공항 외에도 여수공항과 광주공항, 포항경주공항 등에도 설치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수공항의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매립된 4m 높이 둔덕 위에 만들어졌다.
광주공항도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1.5m 높이의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세워져 있고, 포항경주공항 역시 콘크리트와 성토 등으로 2m 높이의 구조물 위에 있다.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의 위법성 논란과 관련해 처음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그다음 날엔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하고, 지난 2일에는 다시 '부서지기 쉬움 은 안테나 등 장비에만 적용되는 기준'이라며 입장을 계속 바꿔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구 공항과 청주공항 등 중형 규모의 공항은 콘크리트 둔덕 없이 로컬라이저가 세워져 있어 전국 공항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 활주로 짧고 종단안전구역도 기준 미달…이탈 방지 시스템 전무
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2천800m로 국내 공항 중 짧은 편에 속한다.
인천공항(3천750∼4천m), 김포공항(3천200∼3천600m), 김해공항(3천200m) 등 규모가 큰 공항에 한참 못 미친다.
청주공항(2천744m), 대구공항(2천755m), 원주공항(2천743m), 사천공항(2천700m), 포항경주공항(2천134m), 여수공항(2천100m), 울산공항(2천m) 등 대부분 중소형 지방 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3천m가 안 된다.
활주로 길이는 모두 국제규격 이상이지만 길이가 길며 길수록 비상 착륙 시 항공기 오버런(이착륙 시 활주로를 벗어나는 상황) 가능성이 작아진다.
종단안전구역은 대부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권고 기준에 미달인 것으로 나타난다.
'종단 안전 구역'이란 비행기가 활주로 앞쪽에 착륙하거나 맨 끝을 지나쳐 오버런하는 경우 장애물과의 충돌로 항공기가 손상되는 것을 막으려고 활주로 양 끝부분에서 시작되는 평평하고 장애물이 없는 구역을 말한다.
국토부 고시인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 제21조에도 종단안전구역은 착륙대의 끝으로부터 240m를 권고하면서 최소 90m는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 공항의 종단 안전 구역 길이는 포항경주공항 92m, 사천공항 122m, 울산공항 200m, 무안 공항 199m 등으로 최소길이보다는 길지만 모두 권고 기준에 못미친다.
국제항공기구는 '활주로 이탈 방지 시스템'(EMAS)이 설치될 경우 종단 안전 구역을 줄일 수 있다고도 하지만 국내 공항에는 설치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탈 방지 시스템은 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날 우려가 있을 때 동체를 붙잡아서 속도를 확 늦춰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이 시스템은 전 세계 140곳 공항에 설치돼있고,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의 경우 안전공단 구역이 300m 확보돼 있는데도, 활주로 이탈 방지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무안 공항의 경우 둔덕을 치지 않았어도 담벼락이 있어 충돌 후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무안 공항과 같은 지형을 가진 곳은 속도를 제어하는 설비 장치 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900g 청둥오리도 5t 폭탄…소음 피하러 철새 도래지로 간 공항
항공기와 조류 충돌, 즉 '버드 스트라이크'는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제1 요인으로 국내 공항의 입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한국환경연구원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관리 현황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보면 공항의 입지 조건과 조류의 서식 입지는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공항은 소음피해가 덜하고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곳에 주로 건설되는데, 바닷가 주변 갯벌과 습지 등 철새의 서식지가 있는 곳이 많이 선택된다.
국내 대표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은 철새 도래지인 갯벌을 간척해 건설된 곳이고, 낙동강 철새 도래지 주변의 김해공항이나 김포 국제공항도 비슷한 상황이다.
소형공항은 상황도 상황이 비슷한 처지지만 안전 대책은 더 부실하다.
무안국제공항 주변에도 3개의 철새 도래지가 존재했고, 현재 건설이 추진되는 새만금 신공항, 제주 2공항, 흑산도 공항 등도 철새와 관련한 논란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상황인데 조류 충돌 사고는 저고도에서 주로 발생해 사고의 99%는 공항 반경 13㎞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에서는 비행기가 2천피트 이상을 날기 전 조류 충돌 사고의 75.3%가 발생했다.
조류 충돌이 위험한 것은 900g의 작은 청둥오리 한 마리도 390㎞로 이착륙하는 비행기에 부딪히면 순간적으로 4.8t짜리 충격을 주는 폭탄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년간 국내 조류 충돌수는 623건에 달한다. 이 기간 조류 충돌로 회항한 항공기는 7편이다.
◇ 조류탐지 레이더는 한 곳도 없고, 열화상 카메라도 3곳 불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철새가 텃새가 되거나 출몰 시기와 출몰 종이 변화하며 새들이 나는 고도 등을 파악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전국 공항의 조류 충돌 대비는 매우 허술한 상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에 따르면 국내 15개 공항 중 조류탐지 레이더가 설치된 공항은 단 한 곳도 없다.
조류를 탐지할 열 화상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비교적 규모가 큰 김포공항·김해공항·제주공항 등 3개에 불과하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 조류 탐지 레이더와 감시 카메라 등으로 구성된 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이 설치돼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도 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을 도입·운영 중인 점과 대조적이다.
조류 충돌 예방 인력도 공항별로 차이가 커 인천국제공항의 인력 규모는 40명에 달하지만 무안, 광주, 울산, 여수는 각 4명, 양양은 3명, 사천·포항경주·원주는 각각 2명에 불과하다.
무안공항에서도 참사 열흘 전 열린 조류충돌예방위원회에서 인력, 차량 등이 부족해 조류 분산, 포획 실적이 전년 대비 14.4%가 감소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도 사고 당시 현장에는 조류 퇴치 인력이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손형주, 김형우, 이재현, 박정헌, 정다움, 박세진, 허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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