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인 정끝별의 1월 '시쓰기 딱 좋은 날'

연합뉴스 2025-01-05 00:00:26

소설 '남겨진 자들의 삶'

시쓰기 딱 좋은 날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시쓰기 딱 좋은 날 = 정끝별 지음.

정끝별 시인에게 1월 1일은 '첫 일기를 쓰는 날'이다. 2일은 '기꺼이 가까워지는 날', 3일은 '혼술(혼자 마시는 술)하는 날', 4일은 '여왕처럼 키가 큰 날', 5일은 '매생이굴국을 먹는 날'이다.

책은 문학동네 계열 출판사 난다가 매달 한 명씩 시인을 정해 시와 에세이 등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엮는 '시의적절' 시리즈 1월 편이다.

시인은 1월의 모든 날에 별명을 붙이고 어느 날은 시로, 어느 날은 산문으로 서른한 편의 글을 채웠다. 시인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과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4일의 글은 '옛날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이누이트족의 전래동화 '물개 여인과 사냥꾼'을 소개한다.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이 동화에서 물개 여인은 자신이 살던 물속 세상에 돌아가기 직전 인간과 낳은 아들 '오룩'에게 딱 한 번 물속 세상을 여행하게 해준다. 이후 오룩은 인간 세상에 돌아와 물속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노래꾼이 된다.

"오룩이 최고의 노래꾼, 그러니까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룩이 살고 있는 '지금-여기'에서, 오룩이 다시 돌아갈 물속 나라의 '저기-너머'를 들려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난다. 192쪽.

남겨진 자들의 삶

▲ 남겨진 자들의 삶 = 마테오 B. 비앙키 지음. 김지우 옮김.

"어쨌든 걱정하지 마. 네가 올 때쯤이면 나는 없을 테니까."

S는 이 말을 남기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마테오 B. 비앙키는 7년 동안 동거한 동성 연인 S와 1999년 헤어지는데, 그로부터 3개월 뒤 S는 비앙키와 통화한 뒤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다.

소설은 비앙키가 S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S의 시신을 발견한 비앙키, 이웃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 사이렌 소리와 함께 들이닥친 구급대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어 소설은 비앙키가 20여년에 걸쳐 한때 사랑하던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비앙키는 "나 때문인가?", "내가 그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에 시달리며 고통을 느낀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작가와 같은 이름의 화자가 등장하고 실제 있었던 일인 만큼 에세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 책을 소설로 규정했다.

이야기 속 비앙키는 S가 떠난 뒤 어떤 위로에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르고 자기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거쳐 서서히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문예출판사.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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