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노트] 위안화 약할 때 세상은 소란스러웠다

연합뉴스 2025-01-04 12:00:10

위안화

지난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후 나타났던 한국의 혼란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로 일차적으론 마무리됐다. 그 후 코스피는 강세를 나타내며 계엄 선포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외환시장 움직임은 좀 다르다. 원·달러 환율은 2024년 12월 18일 현재 1천430원 대의 고공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2022년 9월의 고점(1천440원)에 다가서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원화 약세를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한국 고유의 위험만 투영된 결과로 봐선 안 된다. 오히려 달러에 대해 동반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동아시아 통화의 보편적 현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 12월 들어 원화뿐 아니라 중국 위안화나 일본 엔화도 달러에 대해 두드러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중국 위안화 약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위안화가 약할 때 동아시아에서 중국 이외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는 2024년 12월 18일 달러당 7.29위안대에 올라섰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인 7.30위안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위안화 약세는 중국 정책당국의 용인하에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2025년 1월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관세율 인상 언급은 중국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장기간의 경기 침체에 시달려온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공격적인 내수 부양을 통해 대외교역에서 발생할지 모를 충격을 흡수함과 동시에 위안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함으로써 관세 부과에 따른 부담을 완충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내수 부양과 관련해선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10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가 시행되고 있고, 외환시장에서는 7.4~7.5위안 레벨까지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과거 위안화의 향방이 큰 관심사가 됐던 경우는 세 번 있었다. 세 차례 중 한 번의 위안화 절하는 동아시아 경제에 재앙으로 작용했고, 한 차례씩 이뤄진 위안화 절하 자제와 절상은 동아시아와 세계 경제를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4년 1월 중국은 전격적으로 위안화 절하를 단행했다. 인민은행은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단숨에 49% 인상(5.8 → 8.7위안)했다. 명목은 환율제도 개선이었지만 실제론 수출 부진을 위안화 절하로 타개하려는 목적이었다. 중국의 무역수지는 1992~1993년에 적자로 반전했다. 주택대부조합 파산 여파로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서 글로벌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중국과 경합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악화로 귀결됐다. 1990년대 중반은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기 전이었고, 중국이 세계자본주의 분업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시기가 아닌데도 위안화 절하로 주변국이 받은 충격은 컸다. 당장 한국의 신발과 섬유 등 저부가가치 경공업이 중국의 공세에 무너졌다.

1995년부터는 일본 엔화도 추세적 약세로 반전되면서 동아시아에서 격렬한 환율 전쟁이 벌어졌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기 위해 해외 차입을 늘렸는데, 이때 행해졌던 과도한 외화차입은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 결과적으로 1994년에 단행됐던 중국 위안화 절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큰 재앙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외환위기가 동아시아를 엄습했던 1998~1999년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여부였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는 외환위기 여파로 크게 절하됐는데, 중국도 수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안화 평가 절하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었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 여부는 1998년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정도로 큰 이슈였다. 중국 관료들은 외환위기를 겪는 주변국 지원을 명분으로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켰다.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했다면 수출 증대를 통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려던 동아시아 국가들에 큰 타격을 줬을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자제함으로써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던 역내 경기 회복에 일조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기여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2010년 공격적인 내수 부양책을 쓰며 글로벌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위기의 진원지였던 서구 경제는 쑥대밭이 돼버렸다. 금융기관들의 파산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었고, 가계의 과잉 레버리지는 경제 정책을 무력화시켰다. 이때 중국이 강력한 내수 부양책으로 글로벌 수요를 진작시켰다. 위안화 절상을 병행하는 가운데, GDP(국내총생산)의 10%가 넘는 4조 위안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다. 포괄적으로 수출보다는 내수를 진작하는 정책이었고, 그 결과 중국의 수입 증가율은 수출 증가율을 상회했다.

당시 한국도 대중국 수출 증가를 발판으로 경기 침체에서 빠르게 벗어났고, 원자재 생산국들도 중국의 수요 확대에 힘입어 위기에서 탈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중국이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살리는 큰 걸음이었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구미 선진국들에서 붙은 불을 사회주의 중국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적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모두 숨죽이고 있는 요즘이다. 여기에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며 환율 전쟁에 뛰어든다면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 커질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