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말레이시아의 과거·현재·미래…KL과 푸트라자야-①

연합뉴스 2025-01-04 00:00:32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에 위치한 말레이반도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오가는 무역상들과 여행자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는 초고층 빌딩 숲과 울창한 열대 우림이 공존한다.

값싸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과 세계적인 요리사가 선보이는 고급 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힌두·불교사원을 다 볼 수 있고, 열대우림 고원에는 복합 휴양도시가 있다.

여행자들에게 말레이시아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을 만큼 즐길 거리가 즐비하다.

쿠알라룸푸르(KL)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도시다. 마천루의 스카이라인과 도시재생으로 거듭난 구도심이 한눈에 들어오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대형쇼핑몰과 재래시장이 뒤섞여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장소인 메르데카 광장부터 국립모스크, 이슬람 예술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말레이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볼거리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비해 행정수도인 푸트라자야는 말끔한 초현대식 건물들로 가득 찬 신도시다.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도시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는 452m 높이의 페트로나스(Petronas) 트윈 타워다.

페트로나스는 말레이시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으로, 이 쌍둥이 빌딩은 한국과 일본 건설회사가 건물 한 동씩 건설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지금도 쌍둥이 건물로는 가장 높다.

이 건물은 그 독특한 디자인과 크기로 주목받는다.

건물의 외관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미니멀한 장식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건물 정면에 있는 기하학적 패턴은 이슬람 문양을 연상시킨다.

말레이시아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설계됐으며, 쿠알라룸푸르의 경제 및 상업 중심지인 KLCC(Kuala Lumpur City Centre)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인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 방문객들은 41층에 위치한 스카이 브릿지와 86층 전망대에서 KL 시내와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저녁 시간대에 이곳을 찾는다.

필자가 여행 첫날 저녁 식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건물 앞은 기념 촬영을 하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새통이었다.

건물 뒤편에서는 분수 쇼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분수 쇼를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추억을 담기도 했다.

다음 날 건너편 임페리얼 렉시스 호텔의 수영장과 스카이라운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쌍둥이 빌딩과 주변 스카이라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메르데카 광장과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둘째 날 첫 방문지는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광장 국기 게양대에 걸려있던 영국 국기를 끌어 내리고 말레이시아의 국기를 게양한 메르데카 광장(Dataran Merdeka)이었다.

8.2㏊ 면적에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에는 천연 잔디가 심겨 있다.

원래 크리켓 경기장이던 공간이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으로 바뀌었는데 잔디로 된 바닥이 돌이나 아스팔트에 비해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줬다.

대형 말레이시아 국기가 광장 남쪽 100m 높이의 국기 게양대에 걸려 있다.

광장 동쪽 길 건너편에는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이 우뚝 서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이던 1897년에 지어져 주요 행정부의 부서로 사용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40m 높이의 시계탑과 햇빛을 받으면 우아하게 빛나는 구리로 만든 돔이 인상적이다.

새해를 맞는 신성한 의식과 독립기념일인 메르데카 데이의 시가행진 때는 뒷배경 역할을 한다.

이 건물은 2개로 이뤄졌는데 현재 북쪽은 대법원, 남쪽은 국립섬유박물관으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관광객은 메르데카 광장 풍경의 일부가 됐다.

차를 타고 광장에서 남쪽으로 5분쯤 가면 쿠알라룸푸르 역이 보인다.

역이라기보다는 호화로운 궁전 같은 외양의 이 건물은 1910년 영국의 건축가 허브복(Hubbock)이 오스만 튀르크, 무굴, 고딕, 그리스 양식을 혼합해 설계했다.

흰 벽에 양파 모양의 아치형 문, 뾰족한 탑, 철로 된 지붕 등이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국내 모든 역과 싱가포르, 태국을 이어주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은 KL 중앙역에 물려줬다.

지금은 도심과 근교를 연결하는 일부 열차, 방콕이나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이 역에 정차한다.

◇KL의 이슬람문화

역사적인 독립 선언이 이뤄진 메르데카 광장 인근에는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 2곳과 박물관이 있다.

광장 북쪽 끝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을 지나면 도심 속 샛강인 곰박강이 나오고, 강 건너편에 KL에서 가장 오래된 '자멕 이슬람 사원'(Masjid Jamek)이 서 있다.

광장에서 도보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다.

1909년에 세워진 이 사원은 도시를 흐르는 강 사이로 현대식 건물들과 어우러져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Masjid Negara)는 KL역의 북서쪽에 있다.

높이 73m의 첨탑이 있어 멀리서도 찾아가기 쉽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독립의 염원을 담아 식민지 시절 교회가 있던 자리에 5년간 공사를 거쳐 1965년에 문을 연 말레이시아 이슬람의 상징적 건물이다.

최대 8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고 5천300㎡ 규모의 큰 정원이 있다.

전통적인 이슬람 예술이나 서예 장식 등으로 우아하게 꾸며진 내부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푸른색의 메인 돔은 열대우림의 기후에 내리는 많은 비가 잘 흘러내리게 한 듯, 우산을 반쯤 접은 것 같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18각의 돔은 이슬람교 5계율과 말레이시아 13개 주를 상징하는 독립 정신의 심벌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국립 모스크 서쪽으로 길을 건너면 말레이시아 이슬람 예술 박물관(Islamic Arts Museum Malaysia)이 나온다.

1998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이슬람 예술의 관리자, 수집가, 보존자 및 교육자의 역할을 포괄하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문화 명소라고 박물관 책자에 소개돼 있다.

12개의 상설 갤러리로 구성된 이 박물관에는 정교한 보석부터 대형 이슬람 궁전 모형까지 1만2천개 이상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인도, 중국, 말레이 등 각 지역의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볼 수 있다.

서쪽 외곽에 있는 이스타나 느가라 말레이시아 왕궁은 최고 왕인 아공(Agong)이 거주하는 곳이다.

내부는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입구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매시간 말을 탄 경비병 교대식이 열린다. 밤에는 왕궁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관람객들을 유혹한다.

◇재래시장과 차이나타운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뒤편 클랑강 건너 동쪽은 KL의 구도심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중앙시장과 차이나타운 등이 있다.

중앙시장은 180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이곳에서 고물 시계, 보석, 목공예품, 주석제품, 수공예품, 전통 의상, 골동품 등 다양한 기념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시장건물 입구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고 주변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중앙시장에서 동남쪽으로 두 블록 이동하면 차이나타운으로 잘 알려진 페탈링 거리가 나온다.

이곳도 중앙시장과 비슷한 재래시장으로 중국 음식점과 오래된 건물, 카페,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느릿느릿 걸으며 반짝이는 네온과 낡은 상점의 전통 의류, 중국 의약품 등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행시간에 쫓겨 카페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차이나타운 남쪽 끝에는 1960년대 차이나타운의 일상을 재현해 복원한 골목인 콰이차오홍(鬼仔巷)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콰이차이홍은 광둥어로 '작은 유령 골목'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낡고 방치된 공간이었으나 최근 몇 년 동안 재생 작업을 통해 건물 벽에 과거의 일상 풍경을 담은 벽화를 그려 놓았다.

과거 차이나타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벽화들이어서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다.

필자도 동행자에게 부탁해 이 거리에 있는 옛날 이발소 의자에 앉아 벽화를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기념 촬영했다.

'바틱'(Batik)은 동남아시아 천연 염색 기법의 하나로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테하스튜디오(Teja Studio)와 중앙시장에는 천에 바틱 문양을 그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테하스튜디오는 디자인, 그래픽 아트, 브랜딩 및 디지털 미디어 제작 등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Teja'라는 이름은 말레이어로 '빛' 또는 '광채'를 뜻한다.

창의적인 비전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곳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일행은 이 스튜디오에서 바틱 문양 그리기를 체험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메르데카118 빌딩

차이나타운 남쪽 끝에서 동쪽 언덕 위를 바라보면 전체 높이 678.9m의 거대한 '메르데카118 빌딩'이 우뚝 솟아 있다.

올해 1월 완공된 이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828m)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2018년 완공한 베트남 호찌민시의 랜드마크81(461.2m)을 제치고 동남아시아 최고층 마천루 타이틀을 차지했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 삼성물산이 건설을 맡았다.

호텔, 오피스, 거주지 등이 뒤섞인 일종의 주상복합 빌딩이다.

쿠알라룸푸르에는 높이 400m가 넘는 빌딩이 2개 더 있다.

더익스체인지 106 빌딩(453.6m)과 KL타워(421m)가 그것이다.

◇연방 행정수도 푸트라자야

푸트라자야(Putrajaya)는 새 행정 수도로 건설한 연방 직할구 가운데 하나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과밀화와 혼잡을 줄이기 위해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정부 청사를 이 지역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여전히 말레이시아의 수도로 남아있고, 왕실과 입법부도 아직 KL에 있다.

쿠알라룸푸르(1974년)와 라부안(1984년)에 이어 2001년 세 번째 연방 직할구가 됐다.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 푸트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푸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왕자', '남자아이'를 뜻하며 '자야'는 '성공', '승리'를 뜻한다.

푸트라자야는 자연의 모습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관광 명소로는 행정부 건물인 페르다나 푸트라(Perdana Putra)와 총리실인 세리 페르다나(Seri Perdana)가 있다.

총리실을 등지고 오른쪽 호숫가에 분홍색 돔이 특징인 푸트라 모스크(Putra Mosque)와 그 앞에 있는 푸트라 광장(Putra Square)은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일행이 도착한 날에도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관광객을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이동했으며 진입로 부근은 승용차로 가득했다.

푸트라 모스크는 말레이시아 국민에게는 24시간 열려있지만, 관광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된다.

호수를 사이에 두고 모스크 건너편에는 셀랑고르 술탄 궁전이 있다.

또 호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건축재료가 강철이어서 붙여진 이름의 강철 이슬람 모스크도 볼 수 있다.

푸트라 모스크와 강철 이슬람 모스크 사이에는 아치가 아름다운 현수교 '세리 와와산 다리'가 놓여 있다.

푸트라자야는 독특한 디자인을 뽐내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srba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