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한 가운데, 사고 원인으로 무리한 운항과 공항 내 부적절한 시설물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무안공항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참사의 피해를 키웠다는 해외 항공 전문가들의 분석이 제기되며, 과거 유사 사고에서는 이러한 구조물이 없어 피해가 덜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 3분기 월평균 운항시간, 제주항공이 가장 길어…무리한 운행 가능성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의 제주항공 공시자료를 보면 이 항공사의 올해 3분기 월 평균 여객기 운항 시간이 국내 6개 항공사 중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운항 시간은 총 유상 비행시간을 항공사의 운영 여객기 대수로 나눈다.
이에 따라 제주항공은 418시간으로,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 355시간, 아시아나항공 335시간보다 많고, 다른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 386시간, 진에어 371시간, 에어부산 340시간보다 더 길게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은 최근 48시간 동안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와 무안, 제주, 인천공항 등 모두 13~16차례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은 전날 3차 브리핑에서 “747-800 항공기는 미주나 유럽 등 긴 노선을 가는 비행기가 아니다”라며 “그런 큰 비행기들과 이착륙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을 수는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도 전날 브리핑을 통해 “제주항공 항공기 가동률이 높다는 점은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서 “항공 안전 점검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참사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제주항공이 무리한 운행을 하면서 사고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여객기는 조류 충돌로 인해 랜딩기어(착륙장치, 바퀴부분)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조류 충돌과 랜딩기어 오작동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현재 조사 중이다.
■ 해외 전문가 “콘크리트 장벽이 피해 키워” 지적…국토부, ‘규정대로’ 브리핑 삭제
해외 항공 전문가들은 제주항공의 여객기의 사고 당시 영상을 보고 분석한 결과 무안공항 활주로 주변에 없어야 할 콘크리트 구조물로 인해 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사고 당시 영상에서는 동체 착륙까지는 무사히 이뤄졌지만, 둔덕의 장벽에 부딪혀 폭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장벽이 없었다면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전 컨설턴트 전문가 존 콕스는 “착륙 영상을 보면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것은 조종사가 일정 수준 제어를 유지하며 착륙했다는 것을 말한다”면서 “콘크리트 장벽이 없었다면 비행기는 안전하게 정지할 공간이 충분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비행안전재단(FSF) 하산 샤히디 회장은 “조사관들이 (활주로) 주변 구조물 배치가 국제 표준을 준수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라며 “활주로 근처 물체들은 (항공기와)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것들로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항공기 조종사인 더그 모스도 “공항의 구조물이 사고의 큰 원인으로 보인다”면서 “이상한 공항 설계를 많이 봤지만 이건 문제가 많다. (공항 설계 시) 활주로에서 이탈할 수 있는 부분을 예상해야 한다”고 했다.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가 비상 착륙 당시의 영상을 보면 동체 착륙까지는 안전 착지해 미끄러지듯이 전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객기의 진행 방향에 있는 구조물인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에 부딪히면서 여객기가 폭발하고 화염에 휩싸였다. 이 방위각이 부서지기 쉬운 것이 아니라 흙더미 위에 단단한 콘크리트로 제작된 것이 참사의 원인인 셈이다.
과거 국적 항공기가 로컬라이저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당시 구조물은 콘크리트로 설치돼 있지 않아서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4월14일 아시아나항공이 일본 히로시마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 로컬라이저는 쉽게 부서지도록 돼있어서 여객기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당시 탑승객 81명은 모두 생존할 수 있었다.
국토부는 참사의 원인인 콘크리트 방위각에 대해 전날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고 발표했지만, 이날 해당 브리핑 내용은 국토부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사고 조사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연방항공청(FAA)과 사고 여객기의 제작사인 보잉사도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예비 보고서는 한 달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조사는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