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정신건강 전문가들 "트라우마 극복 핵심은 사회적 지지"(종합)

연합뉴스 2024-12-31 00:00:17

"감정 과도한 억제 말고 솔직한 대화·도움 요청…아이들에게 뉴스 반복노출 금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놓인 국화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유가족을 비롯한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감정을 과도하게 억제하기보단 울고 싶을 때 울면서 건강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특히 사회적 지지야말로 재난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인 만큼 가까운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필요시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라고 강조했다.

◇ "과도한 감정 억제는 금물…울고 싶을 때 울어야"

30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등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사고와 상실에 직면한 생존자와 유가족은 불안과 공포, 정신적 혼란, 슬픔, 무력감, 분노, 죄책감, 수면 문제와 신체 증상 등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재난 트라우마는 사고 직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신체적·정신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각자 느끼는 슬픔과 고통의 정도는 물론이고 회복되는 기간도 다를 수 있어 개인의 상황에 맞춰 치유해야 한다.

우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회복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서히 건강하게 대처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애도를 위해 ▲ 울고 싶을 때 운다 ▲ 가족·친구와 솔직하게 대화한다 ▲ 도움을 요청한다 ▲ 필요한 도움을 받아들인다 ▲ 끼니를 거르지 않고 수면을 취하는 등 스스로를 잘 돌본다 ▲ 사별이라는 현실을 수용한다 등을 실천하라고 조언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와 슬픔을 인지하고, 고인과의 상징적인 연결고리를 찾아보며 감정을 정리하는 것도 좋다. 종종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생각을 빨리 내보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면 과도하게 감정을 억제하거나, 고인과의 사별을 부인하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생각에 빠지는 건 삼가야 한다. 고인을 생각나게 하는 자극이나 대인관계를 일부러 회피하거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서 폭음 등 충동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

◇ 마음 안정화 기법 시도·전문가 도움 고려…아이들에 뉴스 반복 노출 없게

재난을 겪은 후 생기는 스트레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므로 주위 사람과 감정을 나누되 증상이 심할 때는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할 때는 숨을 코로 들이마신 뒤 입으로 천천히 끝까지 내쉬면서 심호흡하거나,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킨 상태에서 양측 팔뚝에 양손을 두고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는 '나비 포옹법'을 시도하는 것도 좋다.

괴로운 감정이 커질 때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쿵 내려놓은 뒤 땅에 닿아있는 느낌에 집중하면서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착지법도 해볼 만하다. 고통의 감정이 아닌 현재 자신의 발이 닿아있는 현실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유가족 외에 일반인도 사고 관련 소식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재난 트라우마를 호소할 수 있다.

사고 관련 소식은 정보 취득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확인하고, 일상을 내팽개친 채 뉴스에만 몰입해 두려움을 증폭하기보다는 각자 생활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존에 공황장애나 비행공포증 등을 앓는 환자는 이번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고통과 불안의 정도가 커질 수 있으므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각자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행동에 있어 자신만의 방식과 몫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어려운 시기에 공허하고 우울해지기 쉬우니 가족을 비롯한 주변을 챙기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희망을 찾아가는 게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어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비통한 소식을 다각도로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른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의 충격에 노출되지 않게 배려해달라"고 당부했다.

참사 당시 장면이 아이들에게 지나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당장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도 악몽이나 공포증 등을 호소할 수도 있으므로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은 "아이들이 (사건에 관해) 질문할 경우 이를 막지 말고 사실에 입각한 정보만 대답해줄 수 있는 선에서 간단히 알려주시길 바란다"며 "다만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반복해서 사고와 관련한 질문을 하거나 몰두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jan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