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성찰·자유·갈등 속 불안 등 다룬 책 잇달아
스티븐 핑커·요한 하리 등 인기 작가 신작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25년 을사년에도 양서들은 꾸준히 서점가에 나올 전망이다. 핵전쟁 시나리오를 다룬 책부터 유명인들의 평전까지 다양하다. 내년 주목해서 볼 책들을 추려봤다.
◇ 전쟁의 시대를 성찰하는 책들
올해는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지속된 한해였다. 내년도 불안하다. 미국의 힘이 약화하면서 그간 미국 위세에 눌려왔던 분쟁 지역 국가들이 발호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듯, 내년에도 전쟁을 다룬 책들이 잇달아 나올 전망이다.
상반기 출간될 예정인 '24분'(문학동네)은 북한 핵미사일 발사 24분 후 워싱턴 상공에서 벌어지는 핵전쟁을 다룬 책이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애니 제이콥슨이 수백 건의 인터뷰와 기밀문서 연구를 통해 핵전쟁이 몰고 올 파장을 예상했다.
상반기 중 출간될 '한국전쟁의 심문실'(후마니타스)은 85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한국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에 관한 고전적 역사 서술보다는 전쟁 자체가 지닌 폭력성에 방점을 뒀다. 한국전쟁 전문 연구자인 모니카 김 위스콘신대 교수가 쓴 이 책은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당신은 어느 나라의 국민이 될 것인가'와 같이 한국 전쟁 심문실에서 벌어졌던 질문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과 욕망을 들춰본다.
출판사 글항아리가 내년 출간하는 '붉은 굶주림'은 러시아 내전(1917~1921) 후 발생한 소련의 대기근(1931~1933)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또 다른 글항아리 신작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나치군인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말한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이다. 저자이자 철학자인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유대인을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 남녀노소로 쪼개진 세상…불안과 불만 직시하기
어지러운 건 세계뿐만이 아니다. 각각의 사회도 혼란스럽다. 갈등 양상은 세대를 가로지르고, 남녀를 아우른다.
5월 출간 예정인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민음사)는 오늘날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파고든 책이다. 유리천장이 여전히 공고하지만, 그 아래에 서식하는 남성들도 있다. 여성들에 뒤처진 이들 남성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 그리고 진보 정치로부터 외면받는 그들의 이야기를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처드 리브스가 듣고 분석했다.
하반기에 나올,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신간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문학동네)는 '젠더' 관련 주요 논쟁을 소개하고, 젠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항적 상상력을 모색한 책이다. 역시 하반기에 출간될 '가속사회의 청년들'(문학동네)과 '우리, 나이 드는 존재'(휴머니스트)는 건강의 관점에서 세대를 바라본 책이다. '가속사회의 청년들'은 한국의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가 2030 세대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분석하고, '우리, 나이 드는 존재'는 10인의 여성 작가가 나이를 잘 먹기 위해 지금 하는 일을 전한다.
◇ 세상을 과학적으로 보는 방법들
갈등으로 뒤덮인 어지러운 세태를 분석하려면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4월 출간되는 '극단주의에 빠진 뇌'(어크로스)는 사회적·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극단주의에 빠질 위기에 봉착했는지를 조명한다. 이어 극단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생각과 태도를 지녀야 할지도 논한다.
상반기에 독자들과 만날 예정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의 신간 '이성이란 무엇인가'(사인언스북스)는 합리적 추론을 지탱하는 지적 도구, 즉 이성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6월 출간하는 '컴퓨터 파워: 전쟁이 만들어온 계산의 역사'(돌베개)는 과학기술 문명이 고도화하는 궤적의 중심에 있는 연산력의 역사를, 로버트 새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문학동네)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한 반박을 담았다.
◇ 마음먹고 '벽돌 책'에 도전해볼까
여력이 있다면 묵직한 내용의 두꺼운 책들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3월 출간되는 '원문 열하일기'는 학계의 기대작이다. 김혈조 영남대 명예교수가 1932년 박영철본 '연암집' 속에 별집의 형태로 수록된 '열하일기'를 저본(底本) 삼아 국내외의 수많은 '열하일기' 이본(異本)과 대조·교감(校勘)해 완성했다. 되도록 '열하일기'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고, 원본의 오류까지 찾아내 바로잡았다고 출판사 돌베개는 전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책도 눈길을 끈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가 쓴 '김규식 평전'(돌베개)은 근현대 역사 속 세계를 누비며 종횡무진한 우사 김규식의 궤적을 촘촘하게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실상'(돌베개)은 일제강점기 통계와 사료를 통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위를 논박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쓴 '자유의 길'(21세기북스)은 민주주의, 경제학, 좋은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았다. 이밖에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를 조명한 카트리나 포레스터의 '정의의 그늘'(후마니타스), 혼외자를 탄압해온 법과 기독교 신학의 뿌리를 분석한 존 위트의 '아버지의 죄'(한길사)도 관심작이다.
◇ 위인들의 세계부터 질병과 건강까지
'말하라 침묵이여: 제발트 평전'(글항아리)은 20세기 독특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W.G. 제발트를 조명한 평전이다. 책은 그의 삶과 작업을 탐색하는 첫 평전으로, 저명한 전기작가인 캐럴 앤지어가 제발트 주변인과 그의 작품들을 추적했다.
7월 출간되는 '비스마르크'(21세기북스)는 독일 통일을 이끈 비스마르크의 생애를 통해 권력과 외교의 본질을 조망한 작품이다. 비스마르크의 뛰어난 정치적 재능과 함께 냉혹한 성격도 함께 다룬다.
상반기 중 출간되는 '암일지'는 작가 오드리 로드가 유방암에 걸린 후 투병 기록을 그린 회고록이다. 여성의 신체, 질병, 정체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신간 '매직 필'(어크로스)에서 비만과 몸, 의지력과 수치심에 관해 우리가 묻지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장강명은 '꽁치 샐러드를 먹다'(김영사)를 통해 동물 윤리에 대한 여러 입장과 함께 작가 본인이 채식을 시도하며 공부한 결과를 독자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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