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제주인 지혜 깃든 바람의 길 제주 돌담…문화유산으로 지킨다

연합뉴스 2024-12-29 09:00:12

밭담·원담·잣담 등 쓰임새 따라 다른 이름

조례로 보전·전승 법제화 '시동'…유네스코 등재도 추진

눈 내린 제주 밭담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거칠고 투박한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은 섬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농부가 일하는 밭에서도, 말과 소가 풀을 뜯는 목장에서도, 해녀가 물질하는 바닷가에서도 어김없이 돌담을 마주하게 된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이 지켜온 돌 문화와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소개한다.

◇ '밭담', '원담' 다 같은 돌담이 아니다

제주의 돌담은 흙이나 시멘트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돌을 모양에 따라 맞물리면서 쌓아 올린다. 돌 틈 사이로 바람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해 태풍이 불어닥쳐도 쓰러지지 않는 견고함을 지녔다.

제주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선에 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돌담은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집 주변을 둘러싸면 집담, 밭 경계를 표시한 밭담, 집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쌓으면 올레담이다.

공동목장 경계용으로 쌓은 잣담(잣성), 해안가 공동어장을 만든 원담, 무덤을 둘러싼 산담도 있다.

제주 밭담

금능 원담축제 맨손 고기잡기

가지각색 이름을 가진 돌담에는 옛 제주인의 지혜가 녹아있다.

밭담은 밭을 일구다 나온 돌덩이를 한쪽 편에 쌓아 만들어졌다. 밭과 길의 경계 역할뿐 아니라 거센 바람으로부터 토양 유실을 막고 곡식을 보호했다.

제주지역 밭담을 이어 붙인 총길이는 지구 둘레 반바퀴인 약 2만2천㎞로 추정된다.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 밭담은 '흑룡만리'(黑龍萬里)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원담은 해안가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쌓은 돌담으로 '친환경 그물' 역할을 했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원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때 고기를 잡는다.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도에 국영 목장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목축 유적이다. 제주에서 목축업이 성행했으며 목축업 근거지가 중산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제주 돌담

◇ 유네스코 가는 '제주 돌 문화'

이처럼 제주의 정체성을 품은 제주의 돌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움직임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다.

2024년 막바지인 이달 16일 열린 제주도의회 제434회 임시회에서 '제주특별자치도 돌 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 제정안'이 통과됐다.

이 조례는 제주의 돌 문화를 희소가치가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보고, 체계적인 보존과 전승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됐다.

조례 내용을 보면 돌 문화의 발굴·조사·연구사업, 문화유산 및 무형유산 지정·보호·관리, 전승자 지원, 돌 문화의 세계화와 홍보 등이 있다.

특히 제주 돌 문화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추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 그동안 제주 돌 문화를 정책적으로 보전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돌 문화 덕에 관련 유산이 많지만 문화재 지정을 통한 정책적인 보호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훼손과 멸실이 이어졌고 관련 조사도 부족해 남은 유적의 수를 헤아리기도 힘든 상황이다.

실제 제주대학교 산업응용경제학과 고성보 교수가 2001년과 2005년 인공위성 사진 차이와 현장 확인 등을 거쳐 제주밭담 훼손율을 측정한 결과 평균 훼손율은 연간 2.9%로 조사됐다. 각종 개발이 이유였다.

제주도 차원에서 이뤄진 돌담 현황 관련 조사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다수 숲길의 잣성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강철남 의원은 "제주 돌 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보존과 계승을 통해 세계적인 유산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며 "이 조례를 통해 돌 문화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미래세대에 전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제주도는 '제주 돌담 쌓기 지식과 기술'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돌담 쌓는 기술을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내년부터 신청 절차에 돌입해 2028∼2029년 등재를 목표로 한다.

다만 접착제나 회반죽을 사용하지 않고 돌을 서로 물리게 쌓아 구조물을 만드는 돌 쌓기 방식인 '메쌓기'가 2018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크로아티아 등 8개 국가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제주도는 신규가 아닌 확장 등재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제주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과 제주해녀문화가 있다.

제주밭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어업유산으로 등재됐고, 이듬해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dragon.m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