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 공세에 '티메프' 사태로 불확실성 증폭
쿠팡·네이버 2강 구도 속 생존경쟁 격화
"내년에 더 어렵다"…매각·합병·제휴 등 합종연횡 활성화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한국 전자상거래(K이커머스) 시장에서 2024년은 격변의 해로 기록됐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과 같은 중국계 플랫폼의 시장 침투와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초래한 티몬·위메프(티메프)의 영업 중단 등으로 시장 구도가 뿌리째 흔들리며 불확실성을 높였다.
이런 가운데 최상위 사업자인 쿠팡과 네이버(NAVER)[035420]의 시장 장악력이 더 커지면서 중하위권 플랫폼들은 가혹한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이커머스 업계는 내년에는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29일 전망했다. 내수 경기 침체 속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플랫폼의 실적 부담이 가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뒤따른다.
◇ C-커머스 출현에 티메프 사태까지…시장 불확실성 증폭
올해 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 요인은 중국계 플랫폼의 시장 진입과 영향력 확대다.
모회사 알리바바그룹의 막강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이 초저가 상품을 무기로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파고들며 토종 플랫폼들을 긴장시켰다.
중국 이커머스를 일컫는 이른바 'C-커머스'가 시장에 불러들인 파장은 작지 않았다.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기준으로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 월간 이용자 수는 967만명으로 주요 종합몰 가운데 쿠팡(3천220만명)에 이어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월간 이용자 수는 2년 전인 2022년 11월의 343만명과 비교하면 3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707만명)보다 36.8%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상륙한 테무도 지난달 733만명의 이용자 수를 확보하며 11번가(889만명)에 이어 4위에 안착했다.
최근 들어 판매 상품의 안전성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논란이 이어지며 많은 소비자가 이탈했으나 여전히 무시하기 어려운 이용자 기반을 보유한 셈이다.
C-커머스의 한국 공략은 토종 플랫폼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오픈마켓 형태의 플랫폼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었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그룹 계열 플랫폼인 G마켓(지마켓)의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341억원으로 지난해(322억원)보다 5.9% 늘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고자 마케팅비를 늘린 게 주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직매입 중심인 쿠팡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영업이익이 급감한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가진 콘퍼런스콜에서 "새로운 중국 커머스 업체의 한국 시장 진출은 업계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과 소비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빠르게 다른 쇼핑 옵션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고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6∼7위권인 티메프가 1조원대 판매대금 미정산 여파로 갑작스럽게 몰락하며 시장의 변동성을 키웠다.
판매자는 물론 소비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전체 1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남겼다.
이 사태로 플랫폼 안정성과 공신력이 부각하며 쿠팡과 네이버와 같은 시장 지배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 심화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공개한 '이커머스 시장연구' 정책보고서에서 "쿠팡, 네이버 등 상위 이커머스 중심으로 시장 집중도가 높아지는 양상"이라며 "티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도 이러한 시장 집중도 변화에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 복잡해진 '생존 셈법'…합종연횡·비용 절감 사투
짧은 기간 이커머스 시장이 요동치면서 각 플랫폼의 생존 방정식은 더 복잡해졌다.
올해는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종연횡·이합집산 전략과 수익성 개선을 목표로 한 비용 절감 노력 등의 양태로 나타났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곳은 신세계그룹이다.
신세계는 지난 6월 CJ그룹과 물류 동맹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알리바바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G마켓-알리익스프레스 간 파트너십 구축을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는 내년 상반기에 설립될 합작법인의 자회사로 편입돼 이른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사업하게 된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보유한 200여개국 해외 네트워크에 올라타 판로를 넓히고 이를 계기로 실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G마켓과 공신력 있는 G마켓의 60만 판매자망을 활용해 한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알리익스프레스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전략적 동맹이다.
업계에서는 그간의 예상을 벗어난 '깜짝 결합'을 두고 쿠팡·네이버가 강고하게 버티는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오월동주'(吳越同舟·적대적인 세력이 서로 협력함),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함) 등의 중국 고사성어가 회자하기도 했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000120] 등과 손잡고 배송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네이버는 오늘·내일배송 외에 내년부터 주문 1시간 내외에 상품을 배송해주는 '지금배송', 다음 날 오전 도착하는 '새벽배송' 등을 도입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겨냥한 대응이다.
손실을 줄이기 위한 '군살 빼기'도 두드러졌다.
금리 인하기에 몰두한 몸집 불리기가 금리 인상기에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자 업체들이 일제히 '다운사이징'에 돌입한 것이다. 코로나19 시기 20%를 웃돌던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이 올해 들어 7%대로 뚝 떨어진 것도 한 배경이다.
11번가와 G마켓, SSG닷컴(쓱닷컴), 롯데온 등이 인력 효율화를 위해 잇따라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11번가와 SSG닷컴, 롯데온 등은 임대료 절감을 위해 사옥도 옮겼다.
코로나19 이후 확대해온 마케팅·판매촉진비 등도 줄여가는 추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가혹한 한 해를 보낸 이커머스 업계는 내년을 더 걱정하는 분위기다. 내수경기 침체가 지속하는 가운데 C-커머스의 공세는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중국 역시 불황에 시달리고 있어 C-커머스가 우리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당장 테무가 내년에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 확대를 꾀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생존 싸움이 격화하며 경쟁력을 상실한 플랫폼들이 도태되는 자연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와 알리바바가 전격적으로 손을 맞잡은 것에서 보듯 생존 앞에선 적도, 국경도 없는 상황이 됐다"며 "내년에 이커머스 시장에선 살아남기 위한 경영 효율화 작업이 지속하는 가운데 매각, 합병,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방식의 합종연횡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