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배우 공유(45)가 깊이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에서 음악 프로듀서 한정원을 연기한 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성장이 멈춘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극에 몰입감을 더했다.
지난 5일 공유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나 배우로서의 철학,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사랑과 삶에 대해 공유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트렁크’는 독특한 설정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로 공개와 동시에 화제를 모은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다. 작품은 어느 날 호숫가에 떠오른 수상한 트렁크를 중심으로,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둘러싼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려낸다. 이야기는 단순한 멜로를 넘어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요소를 결합하며 관객들에게 색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는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를 중심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상처를 조명한다. 작품은 결혼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공유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대중적인 흥행 가능성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쫓는 대신, 자신이 진심으로 끌리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작품 선택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본질과 그 메시지가 자신의 내면과 얼마나 깊이 공명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동반되는 과정이었다.
“저는 어떤 장르를 추구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 방향이 저와 맞닿아 있다면 그 작품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트렁크’는 저에게 그런 작품이었어요. 계약 결혼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결국 인간의 본질과 사랑의 형태를 묻는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공유는 작품 속 한정원이라는 인물을 매우 특별하게 느꼈다고 한다. 한정원은 어린 시절의 깊은 트라우마로 인해 성장의 한계를 경험하며 감정적으로 메마른 상태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정원은 현실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할 수 있는 고립된 내면의 모습을 대변한다. 정원의 이런 복잡한 내면과 자신만의 고독한 세계는 공유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치 어린 나이에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물이죠. 저는 정원이의 건조하고 수동적인 면이 제 안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서 연기하면서도 큰 이질감은 없었어요.”
공유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그의 선택은 대중의 기대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 ‘도가니’(2011)나 ‘82년생 김지영’(2019)과 같은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렬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도전적인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공유는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택해왔다.
“‘트렁크’를 선택한 이유도 같아요. 정원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했고, 그 인물을 탐구해 보고 싶었어요. 그가 가진 트라우마와 방어적인 태도,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계들이 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배우로서 이런 질문을 품을 때 비로소 연기할 수 있는 동력을 얻습니다.”
극 중 한정원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독특한 사랑의 형태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정원과 서연(정윤하)의 관계는 집착과 소유, 그리고 뒤틀린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유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 사랑은 현실과 다른 면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공감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소유의 사랑보다는 서로 독립성을 존중하며 성숙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제가 지향하는 사랑의 모습은 그런 것입니다.”
그는 작품 속 한정원이 보여준 변화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한정원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드러나고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정원이의 변화가 단순한 성장이나 회복의 과정이 아니라, 상처를 끌어안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으로 바라보았다.
“정원이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회복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삶에서 어떤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저는 정원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가 또 다른 고통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로 보입니다.”
‘트렁크’는 이러한 독특한 이야기와 감정선 덕분에 공개 이틀 만에 넷플릭스 국내 톱 10 시리즈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흥미로운 설정과 탄탄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지며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미스터리와 멜로가 절묘하게 결합한 독특한 장르는 기존의 멜로 드라마와는 다른 신선함을 제공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제공 / '트렁크'에 출연한 공유.이번 작품에서 공유와 상대역인 서현진(노인지 역)의 호흡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배우의 연기 조합은 단순한 상호작용을 넘어, 캐릭터들 간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 공유가 연기한 한정원은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을 억누르는 인물이었고, 서현진이 연기한 노인지는 그러한 정원의 내면을 끌어내는 복잡한 감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들의 섬세한 연기와 시너지는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현진 씨는 정말 섬세하고 치밀한 배우입니다.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해 주셔서 연기하는 저에게도 큰 자극이 됐어요. 상대 배우가 이렇게 든든할 때 연기자로서 상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제공 / '트렁크'에 출연한 공유.공유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기 내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얻었다고 했다.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정원이 겪었던 아픔과 그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자신의 삶과도 교차하는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한정원이 감정적으로 억눌린 채 살아가면서도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은 공유에게도 자신의 내면과 진솔하게 마주할 기회를 제공했다. 배우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는 정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지나쳐왔던 감정들과 미처 해결하지 못한 내적 갈등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소유 당하는 것도, 누군가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독립성과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들이 작품을 통해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는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단순히 극적인 서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우리가 삶 속에서 마주하는 여러 감정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작품은 사랑, 상처, 회복이라는 보편적이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은 주제를 중심으로, 각 캐릭터의 서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 메시지를 풀어내고자 했다.
"트렁크는 결혼과 사랑,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겉으로는 자극적인 설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을 곱씹어보시면 깊은 여운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유는 자신을 연기자로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뇌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그는 연기가 완벽히 정립된 기술이나 결과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히려 연기는 그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스스로를 탐구하며,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흔들림은 그에게 불안의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삶은 흔들림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통해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