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더 걱정…자영업 대출 1천64조·연체 18조원 '역대최대'

연합뉴스 2024-12-29 07:00:17

3분기에만 대출 4.3조·연체 2.2조 더 늘어…연체율 9년 반만에 최고

내년 금리인하 멈추고 정국혼란에 소비위축 겹치면 '대위기'

새해가 더 걱정…자영업 대출 1천64조·연체 18조 '역대최대'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최근 5년 가까이 코로나19 대유행과 소비 부진 충격을 금융기관 대출로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속속 한계를 맞고 있다.

이들은 금융권에서 1천64조원 넘게 빌렸지만, 현재 18조원 이상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출 잔액과 연체액 모두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새해 희망을 품기도 쉽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내년에도 자영업자들은 계속 높은 수준의 금리 부담에 짓눌릴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의결 이후 정국 혼란이 길어져 소비 위축 현상이 더 심해지면, 빚 갚기를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더 빨리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 자영업 대출 증가율 다시 오름세…다중채무자 평균 4.3억 대출

29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기말 기준) 현재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천64조4천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자영업자 대출 현황은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약 100만 대출자 패널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사업자대출 보유자를 자영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더해 분석한 결과다.

1천64조4천억원은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기록이다. 2분기 말(1천60조1천억원)과 비교해 불과 3개월 사이 4조3천억원이나 더 불었다.

자영업자 대출 증가율(전 분기 대비)은 지난해 4분기 0.1%로 떨어져 급증세가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올해 1분기 0.3%로 반등한 뒤 2분기와 3분기 모두 0.4%를 유지하며 전반적으로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자영업자 대출을 종류별로 나눠보면 사업자 대출이 711조8천억원, 가계대출이 352조6천억원을 차지했다. 사업자 대출 잔액 역시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다.

자영업 대출자 가운데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은 3분기 말 현재 754조4천억원으로, 작년 3분기(755조6천억원) 이후 가장 많았다. 이들 177만4천명은 1인당 평균 4억3천만원의 대출을 안고 있었다.

다중채무자는 가계대출 기관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대출자로, 이 상태의 자영업자는 사실상 더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한계 상태로 추정된다.

자영업자 대출규모·증가율 추이

◇ 저축은행·상호금융 연체율 11%·4.37%…약 10년내 최고 수준

이들 자영업자의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3분기 말 총 18조1천억원으로 추산됐다.

2분기 말(15조9천억원)보다 2조2천억원 더 늘어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연체액 증가 폭은 올해 1분기 2조5천억원에서 2분기 5천억원까지 줄었다가 다시 커졌다.

이에 따라 연체율 오름세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3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70%로, 2분기(1.50%)보다 0.20%포인트(p) 높아졌다. 1.70%는 2015년 1분기(2.05%)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한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 기반 추산 결과뿐 아니라, 금융기관이 실제로 제출한 업무보고서 상 개인사업자대출의 연체율도 계속 오르는 추세다.

한은 집계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금융업권별 자영업자 연체율은 ▲ 은행 0.61% ▲ 비은행 전체 4.74% ▲ 상호금융 4.37% ▲ 보험 1.28% ▲ 저축은행 11.0% ▲ 여신전문금융사(캐피탈·카드사) 2.94% 수준이다.

1년 전인 2023년 3분기 말과 비교해 은행과 비은행 연체율이 각 0.15%p, 1.50%p 올랐고 특히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에서 3.51%p, 1.55%p나 뛰었다.

한은 시계열 확인 결과, 은행과 비은행 연체율(0.61%·4.74%)은 각 2014년 3분기(0.65%)와 2015년 1분기(5.16%) 이후 10년, 9년 6개월 만에 최고 기록이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연체율(11.0%·4.37%)도 각 2015년 2분기(11.87%), 2014년 1분기(4.57%) 이후 가장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연체율 추이

◇ 내년 금리인하 조기 종료·정치혼란 속 소비위축…자영업 '설상가상'

한은이 지난 10·11월 연속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었지만,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국내외 금리 인하 사이클이 예상보다 일찍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17∼18일(현지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50∼4.75%에서 연 4.25∼4.50%로 0.25%p 낮췄지만,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기존 3.4%에서 3.9%로 높였다. 내년에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니라 두 번 정도만 더 내리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한은의 내년 기준금리 인하 폭도 0.50%p(3.00→2.50%)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매파적 인하 기조를 시사한 데다, 한은도 금리 인하보다는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내년 시장금리가 대출자들이 체감할 만큼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개인사업자 대출 세부업권별 연체율 추이

여기에 탄핵 정국에 따른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 자영업자들의 대출 상환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소상공인 1천63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고, 한은 조사 결과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88.4)도 11월보다 12.3p나 급락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첫해인 2020년 3월(-18.3p)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최근 저소득·저신용 자영업 대출자가 늘어난 데 유의해 채무 상환 능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선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높은 금리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에 대한 자금 지원을 이어가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일부 취약 자영업자의 경우 적극적 채무 조정과 재취업 교육으로 재기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영업 다중채무자 대출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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