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간 개인적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위험성 부각"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한일 양국에 내년은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과 직무 정지가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윤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페루 리마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미래를 향해 더욱 발전시키자"고 뜻을 모았다.
이시바 총리는 연장선상에서 지난 10월 총리 취임 후 양자 외교 목적으로는 처음으로 내년 1월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또 국교정상화 60주년에 맞춰 윤 대통령을 내년에 국빈으로 일본에 초대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달 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한일 외교는 사실상 정지 상태에 접어들었다.
한일관계 개선을 앞장서 추진해 온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국교정상화 60주년 행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 총리는 내달 방한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방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 윤 대통령 국빈 초대로 양국 관계 개선을 내외에 보여주려 했지만, 이 역시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사업 준비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정상 간 셔틀 외교가 취소되는 등 현실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고 있다.
한일 관계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당시 전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나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윤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개선됐다.
당시 양국 간 최대 현안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소송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일본 피고 기업 배상 판결 문제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3월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해법으로 발표했다.
핵심 현안에 대한 해법 발표를 계기로 양국 관계는 급속히 개선됐다.
같은 달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었고 두 달 뒤 기시다 당시 총리가 한국을 답방했다.
기시다 전 총리는 퇴임 직전인 올해 9월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총리로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과 12번째 정상회담을 열 정도로 한일 정상은 관계 개선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양국 간 관계 개선은 민간 교류로도 이어졌다.
올해 1∼11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95만명으로 국적별 집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올해 1∼10월 한국 방문객 중 일본은 263만명으로 중국(400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양국 국민의 상호 방문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 이후 양국 간 논의됐던 정상 셔틀 외교뿐 아니라 장관급 상호 방문도 잇달아 취소되는 등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결론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한일 외교는 사실상 중단됐다.
한국 정부는 국내 반일 여론에도 양국 관계 개선이 상호 이익이라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탄핵과 직무 정지로 개선 추세였던 한일 외교 자체가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대일 중시를 내세워 한일 관계 개선에 윤 대통령이 한 역할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정상 간 개인적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위험성도 부각됐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한일 관계 개선이 양국 국민에게 도움이 될지라도 단지 정상 간 관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양국 정권 교체에도 관계가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대표적인 한일관계 전문가인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는 연합뉴스에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한 윤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퇴진 위기를 맞은 가운데 윤 대통령이 한 정책의 상당수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철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일이 공통의 미래상을 모색하고 협력 네트워크를 재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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