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최정나 장편소설 '로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당신이 보는 세계 = 이명희 외 8명 지음.
사람의 뇌에 손톱보다 작은 칩을 심어 별도의 장치 없이 직접 인터넷에 접속하게 된 미래 사회.
한 광고 전단지가 몇몇 사람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괴담이 퍼지자 정부가 나서 진상을 조사한다.
비슷한 시기 설란은 정치적인 의견 때문에 룸메이트와 크게 다투는데, 이후 룸메이트가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의 조사 결과 사람들의 뇌에 장착된 칩이 '사용자가 불쾌감을 느끼는 대상'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도록 감각을 왜곡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서로 다른 작가의 단편소설 9편을 묶은 소설집 '당신이 보는 세계' 표제작(이명희 지음) 이야기다.
뇌에 장착한 칩을 고침으로써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이 일을 통해 설란은 자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설란은 "진실은 언제나 온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며 룸메이트와 화해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도 수용하기로 마음먹으며 한층 성숙해진다.
이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참신한 단편소설을 담았다.
웹툰 작가가 자기 웹툰에 등장하는 탐정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김희영희'(배예람), 죽은 누나의 흔적을 찾아 바닷가 마을로 향하는 이야기 '나의 첫 장례식', 가상의 국가 고나라를 배경으로 후궁 아들인 주인공이 왕가의 비밀에 맞닥뜨리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이 수록됐다.
황금가지. 348쪽.
▲ 로아 = 최정나 지음.
일곱 살 여자아이 상은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지만, 아버지는 갓 태어난 여동생 로아에게만 관심을 기울인다.
상은은 그런 아버지의 관심을 돌리려다가 사고로 손에 상처를 입게 되고, 분에 못 이겨 "나가 죽어버리라"며 아버지를 향해 악을 쓴다. 그날 집을 나간 아버지는 며칠 뒤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후 친척의 집에 맡겨졌던 로아는 7년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상은은 그런 동생 로아를 '애착 인형'으로 삼고 마음대로 통제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머니 기주는 큰딸 상은의 행동이 정상이 아니란 걸 알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로아가 잘못했다는 듯 "그러니까 언니 말을 잘 들어야지"라고 타이른다.
최정나의 신작 장편 '로아'는 일곱 살 터울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은을 통해 폭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탐구한다.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엄마의 방기와 무관심 속에 상은은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수위가 매우 높은 폭력을 묘사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정신적 외상이 있는 독자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작가정신. 176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