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증권가서 시작…인터넷 발달과 함께 성행
일대일 전달도 명예훼손…민사 배상 책임질수도
모든 단순 유포자 처벌, 현실적으로 한계 직면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지난달 롯데그룹이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고 전체 직원의 50% 이상 감원이 예상된다는 내용의 지라시(정보지)가 온라인상에 퍼져 곤욕을 치렀다.
이로 인해 계열사 주가가 폭락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약 6천억원 증발하자 롯데 측은 반박 자료를 내고 경찰에 지라시 작성 및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달 배우 정우성 씨가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정씨의 사생활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가 카카오톡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받' 또는 '받글'(받은 글) 등의 형태로 급속히 퍼졌다.
최근 비상 계엄 사태와 관련해서도 각종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지라시가 나돌아 국민의 혼란을 가중하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로 인해 피해를 준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친구에게만 전송했다면 괜찮다", "최초 작성·유포자만 처벌받는다" 등 지라시 유포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과연 지라시를 단순 유포한 사람은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 1980년대 증권가서 시작…인터넷 발달과 함께 성행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지라시를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라고 정의한다. '흩어짐', '광고 전단' 등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 'ちらし'(치라시)에서 유래됐다.
1980년대 중반 증권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여의도를 중심으로 주식 종목을 분석한 사설 정보지가 활성화됐고, 증권사가 입수한 주요 정보가 A4용지 한두장에 담겨 퍼진 것이 소위 '증권가 지라시'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이 정치권의 변동성을 미리 파악하고자 정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2000년대 전후로는 연예인들의 가십을 모은 지라시도 유행하게 됐다.
특히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정보 유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지라시는 빠르게 대량 유포되기 시작했다. 내용은 사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근거 없는 낭설로 끝나지만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 기사화됐다.
지라시로 인한 피해도 컸다. 대표적으로 2005년 '연예인 X파일 사건'은 광고 대행사가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 성격, 소문 등을 정리한 문서가 지라시 형태로 유출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08년에는 지라시를 통해 일부 건설사에 대한 근거 없는 부도설이 확산하며 기업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있었다. 2015년에는 구글이 LG전자를 인수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지라시가 유포돼 LG전자 주가가 한때 14.52% 급등하기도 했다.
근래에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왜곡한 가짜 뉴스, 유명 연예인의 결혼설, 그리고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허위 사진 등이 지라시를 통해 퍼졌다. 정보의 출처는 여전히 불분명하며, 사실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확산해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지난 2일 LS증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상장사들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시한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 공시'는 271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66건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 형법·정통망법상 '명예훼손'…민사 배상 책임도
그렇다면 허위 내용이 담긴 지라시를 작성하거나 유포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먼저 지라시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정보통신망법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정통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만약 내용이 허위라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해 처벌이 더 무겁다.
정통망법이 아닌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형법상 명예훼손은 정통망법과 달리 '비방의 목적'이 없더라도 처벌이 가능하다.
명예훼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 즉 공연성을 요건으로 한다. 판례는 비록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더라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을 용인하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면 공연성이 충족된다고 본다. 단체카톡방뿐만 아니라 일대일 대화도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지라시를 넘기며 '유포하지 말라'고 당부했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고, 명시적으로 대상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내용상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면 혐의가 성립한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사실을 적시해 고의성이 없는 경우에도 처벌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방송인 박수홍 씨의 형수가 박씨의 사생활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벌금 1천2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9년 나영석 PD와 배우 정유미 씨의 불륜설 지라시를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방송작가 2명은 각각 벌금 300만원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또 이번 롯데그룹 사례처럼 허위 사실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한 경우 형법상 신용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 형법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사람의 신용을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죄는 명예훼손죄와 달리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경우에만 성립해 진실한 사실을 유포한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사안에 따라 형법상 모욕죄나 업무방해죄로도 처벌될 수도 있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지라시 작성·유포자는 피해자로부터 고발당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도 질 수도 있다.
◇ 모든 단순 유포자 처벌, 현실적으로 한계
하지만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지라시에 비해 실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처벌까지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23년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명예 범죄(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모욕죄 등)는 3만5천451건 발생해 2만4천210건(68.3%) 검거됐다.
정통망법상 명예훼손은 8천22건 발생해 9천439명이 검거됐지만 불기소율이 42.0%에 달했다. 입건조차 되지 않아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까지 추산하면 적발률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익명성을 기반으로 생성·유포되는 지라시의 특성상 모든 유포자를 일일이 찾아 형사 처리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작성자의 IP를 추적하거나 플랫폼의 협조를 얻어야 하지만 시간·비용이 많이 들고 서버가 해외에 있을 경우 협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은 수천명에서 수만 명에 이를 수 있는 모든 유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최초 작성자와 주요 유포자를 잡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또 모든 유포자를 일일이 처벌할 경우 유사 사건과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법적, 행정적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 있다. 과잉 억제 효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지금껏 문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 할 뿐 분명 처벌받은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며 "지라시 유포의 위험성과 법적 책임을 대중에 알리고 단순한 유포 행위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건이 쌓여있는데 한정된 인력으로 온라인 명예훼손에 집중할 수는 없다"며 "지라시가 주로 퍼지는 플랫폼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거나 자율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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