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주지훈에게 2024년은 디즈니+ 시리즈 ‘지배종’으로 시작해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현재 방영 중인 tvN 주말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와 최근 종영한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까지 총 네 작품을 선보이며 숨가쁘게 달려온 뿌듯한 한해이다.
강풀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직접 각본을 쓰고, 배우 김희원이 처음으로 연출에 나선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총 8부작으로 방송됐다. 주지훈, 박보영, 김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김대명, 신은수 등이 주연을 맡았고 주지훈은 극중 조명가게를 항상 지키고 있는 사장 정원영 역을 연기했다.
‘조명가게’는 지난 4일 첫 방송이후 12일 동안 디즈니+ 전 세계 시청 기준 2024년 한국 콘텐츠 중 1위를 기록했다. 플릭스 패트롤 기준 디즈니+ TV쇼 월드 와이드 부문에서 글로벌 2위에 올랐는가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디즈니+ 1위를 차지했고, 홍콩·일본·터키 등에서도 톱10 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주지훈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솔직하고 당당한 화법으로 인터뷰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한 주지훈인만큼 ‘조명가게’ 8부에서의 폭풍 오열신으로 ‘인생작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현재 방영 중인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의 달달한 로맨스 연기로 호평받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이기에 이날의 인터뷰에서도 유쾌함과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 김희원 형이 추천할 작품이 있다고 전화를 하셨어요. 대본을 받고 다음 날 카페에서 만났죠. 원작을 보지 않았었는데 대본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을 맡으셨지만 희원 감독님께 신뢰가 갔어요. 애초 강풀 작가님 팬이었고 강 작가님의 ‘무빙’이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되기 전 ‘조명가게’ 출연을 결정했어요. 김희원 감독님이 처음부터 정원영이라는 캐릭터를 결정하고 저에게 대본을 준 건 아니었어요. 그냥 반은 장난처럼 ‘네가 하고 싶은 인물로 골라봐라’고 하셨어요. 특별히 한 캐릭터에 집중해서 대본을 본 건 아니었어요. 작품 자체가 재미있었고 다 읽고 나니 원영을 하고 싶었어요. 원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연출자의 시선 혹은 관객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지점이 흥미로웠고요.”
주지훈이 연기한 정원영은 어두운 골목길 끝 유일하게 환한 빛을 밝히고 있는 조명가게의 사장이지만 조명을 파는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원영은 조명가게를 찾는 낯선 손님들에게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동일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미스테리한 인물이자 드라마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1~6부까지 별다른 활약도 없이 조명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관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매일 엄마의 심부름으로 전구를 사러오는 여고생 현주에게는 유독 다정하다. 그리고 그런 원영의 비밀은 7~8부가 되어서야 드러나고 현주의 어머니인 정유희와 원영의 관계의 비밀이 밝혀지며 드라마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특별히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캐릭터를 깊게 파는 것이 아니라 리딩을 할 때부터도 작품 전체를 다 읽어 봅니다. 기획의도부터 모든 것에 다 관심이 있어요. 이렇게 작품 전체를 이해하다 보면 캐릭터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죠. 제가 조명가게의 호스트이고 다른 분들은 게스트이었으니까요. 관객들이 흥미를 가지시게 하려면 제가 작품 전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했어요. 원영 캐릭터는 완전한 미장센이라고 봤어요. 이 작품은 기획의도와 메시지가 센 작품이지 배우가 끌고 가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배우의 감정은 후순위였죠. 연기로서 하드캐리할 필요는 없었어요. 배우로서의 무기는 물론 있지만, 저와 상대배우와 이 공간까지 다 미장센인 거잖아요. 특히 함께 하는 배우진이 너무 훌륭했기에 저를 믿고 던질 수 있었어요. 게다가 철두철미한 제작진까지 있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캐릭터를 위해 노력한 지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연기 방법론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야기를 첨언하지 않고 모든 공은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첫 메가폰을 잡은 김희원 감독에 대해서는 엄지손을 치켜 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희원 감독님은 정말 최고였어요. 저에게 감독님의 연출 현장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은 마치 어린 꼬마에게 ‘너희 엄마 좋아?’라고 묻는 거랑 비슷해요. 모든 감독님은 정말 희원이 형처럼 하셔야 해요. 9개월동안 프리프러덕션 기간을 가지면서 충실하게 최선을 다 하셨어요. 마치 학생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잘 듣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서 시험을 치르는 거랑 비슷하죠. 누구나 어떻게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김희원 감독님이 다시 한 번 함께 하자고 부르신다면 대본 없이도 오케이입니다.”
영화 ‘아수라’에서는 황정민, 정우성과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비공식작전’에서는 하정우와, ‘암수살인’에서는 김윤석, 드라마 ‘하이에나’에서는 김혜수와 호흡을 이루는 등 다수 연기파 선배들과 합을 이루며 강렬한 에너지를 선보인바 있지만 ‘조명가게’에서 이정은과 이룬 부녀 호흡은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정은 선배님이 딸 역을 연기했다고 어려운 건 없었어요. 좋은 작가님의 글에 좋은 동료와 연기하는데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인물의 서사는 이미 디테일하게 빌드업이 되어 있었어요. 제가 어떤 감정을 따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죠. 이정은 선배가 전구를 달려고 들어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은 정은 누나의 촬영이 오전에 먼저였고 제가 오후에 찍을 예정이었어요. 오후쯤 되어 감정이 다 날아가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정은 누나가 전구를 들고 문을 여는 순간 감정이 확 내려오더라고요. 오히려 참느라 힘이 들었죠. 아버지를 연기해본 것이 처음이나 다름없는데 사실 저로서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감정이기에 두렵기도 했어요. 어린 딸 역을 연기해준 아역 친구와 사고 현장에서 대화하는 신에서 선물처럼 부성애를 처음 느껴봤어요. 제작진이 잘 구현해준 촬영 현장과 좋은 동료 배우분들 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