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소미 기자] 2024년 국내 배터리 업계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렸다. 전기차 캐즘(수요 둔화)과 중국 기업의 공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가능성이 업계를 뒤흔들었다. 여기에 전기차 화재로 인한 소비자 불안, 고환율·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캐즘 심화 속 중국 공세…K-배터리 점유율 하락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글로벌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올 1~10월 기준 K-배터리 3사의 전기차용 배터리 글로벌 점유율은 20.2%로 전년 동기 대비 3.5%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중국 기업 CATL·비야디(BYD)는 53.6%로 1.7%포인트 상승했다. 내수시장서 몸집을 불려온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테슬라,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들에 공급을 늘린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추세는 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4483억원, 하지만 미 정부가 지원하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금액(4660억원)을 제외한 실적은 영업손실 177억원이다. SK온 역시 AMPC 금액(608억원)을 빼면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3분기 누적 영업이익 61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감소했다.
◇전기차 화재·계엄 여파까지...엎친 데 덮친 격
하반기 연이은 전기차 화재로 소비자들은 '전기차 포비아(공포심)'에 휩싸였다. 이에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시범사업과 제조사 공개 의무화로 안전성 관리를 강화했고, 업계는 품질관리 강화·인증 테스트 고도화·신규 소재 개발 등 안전성을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폼팩터 선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구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완성차 업체들이 CATL이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K-배터리 3사도 각형 전환을 서두르는 상황이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각형 점유율은 지난해 70.9%에서 올해(1~10월) 78.3%까지 상승했다.
국내 정치적 혼란으로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넘나들면서 고환율 압박도 만만치 않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배터리 업체 특성상 고환율은 투자비 증가와 원가 부담 상승으로 이어진다.
LG에너지솔루션 외화 부채는 3분기 기준 6조8284억원에 달했다. 환율이 10% 오르면 최대 2300억원에 달하는 추가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한다. 같은 기간 SK온은 같은 기간 외화 부채는 4조1960억원, 환율이 5% 상승할 경우 178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원화 가치 하락과 수입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美 투자 재조정…폼팩터·소재 다변화 '집중'
북미 시장 공략은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 합작한 얼티엄셀즈 3공장 지분 인수를 추진하며 효율화를 모색했다. 삼성SDI와 SK온은 신규 공장 가동 시기 재조정과 함께 안정적 생산 기반 구축에 나섰다.
폼팩터와 소재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전략이 눈에 띈 한해였다. 원통형, 파우치형을 넘어 각형 배터리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폼팩터와 소재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고객 맞춤형 대응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각형·LFP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각형 배터리 공동개발에 나섰고, 삼성SDI는 GM, 현대차그룹 등과 각형 배터리 공급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SK온 역시 각형 기술 개발을 마치고 잠재 고객과 협상에 들어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시 IRA 보조금 폐지 가능성은 여전히 변수다. 보조금 의존도가 높은 K-배터리 기업들은 정책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따른 전략 수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