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최용구 기자] 올해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의 합산 수주액은 47조원를 넘어서며 목표치를 5조원 이상 초과 달성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수익 선종 위주로 선별 수주에 나섰고, 전반적인 선박 가격 오름세가 이어지며 호실적에 힘을 보탰다.
반면 중국의 질주도 빨라졌다. 중국조선사의 올해 1~11월 수주 척수는 한국보다 6배 이상 많았다. 척수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수주의 척도인 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기준으로도 한국을 앞섰다.
국내업체들은 해외거점 마련을 통한 사업 다각화에 나섰고, 빅테크 기술 개발과 디지털 전환의 시도를 이어가며 차별화를 꾀했다.
◇ 글로벌 거점에 MRO 지원 강화
업계는 글로벌 거점에 인력을 전진 배치하기 시작했다. 선박 판매뿐 아니라 MRO(유지, 보수, 정비)에 이르는 종합 지원 체계 구축의 취지로 인력 지원 및 투자를 공식화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HD 스마트케어 센터’를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파견했다. 한화오션은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잠수함 사업의 수주를 염두하며 현지 지원센터 설립 의사를 밝혔다.
◇ 수소 산업망 공동 대응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등 5개사는 지난 6월 한국선급과 '액화수소 선박용 재료 시험 표준화 공동연구'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액화수소 운반선의 핵심 기자재인 화물창 공동 연구를 위해 손을 잡았다.
수소를 장거리 운송하기 위해서는 영하 253도로 냉각해 800분의 1로 압축한 액체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초극저온 상태에서 안전히 저장할 수 있는 액화수소 화물창의 설계와 제작이 연구의 핵심이다.
한국선급은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과 ‘선박용 수소 엔진’을 개발하기로 했다. 오는 2027년까지 정부지원연구개발비 약 139억원을 지원받아 과제를 수행한다.
삼성중공업 현장 작업자가 3D 디지털 생산도면이 담긴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삼성중공업 제공◇ 작업 효율화 가속
삼성중공업은 지난 6월 '키홀 플라즈마 배관 자동용접 장비(K-PAW)'를 자체 개발하고 업계 최초로 생산 현장에 적용했다. 배관 용접의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한 ‘고속화 작업’ 체계 도입에 나섰다. 9월에는 종이 도면을 없애는 시도를 단행했다. 모든 선박 건조 작업에 ‘3D 디지털 생산 도면’을 적용하며 스마트화를 앞당겼다.
◇ 암모니아 추진선 기회 모색
HD현대미포는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지난 8월 액화이산화탄소(LCO₂) 운반선 건조에 착수했다. 길이 159.9m, 너비 27.4m, 높이 17.8m 규모로 얼음 바다를 안전 항해할 수 있는 내빙(耐氷) 설계기술 등이 적용된다. 개조를 통해 암모니아 추진선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일에는 4만6000톤급 암모니아 추진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건조에 돌입했다. 길이 190m, 너비 30.4m, 높이 18.8m 크기로 화물창 3기를 탑재한다. LPG, 암모니아 등을 최대 4만6000㎥까지 운반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암모니아와 디젤 연료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 리트로핏, 비용·시간 절감 대안 '부상'
LNG 운반선을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등 해양플랜트로 리트로핏(개조)하는 사업이 화두가 됐다. 지난 9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조선업 분야 글로벌 전시회 ‘가스텍 2024’에서도 관심은 이어졌다.
업계는 노후된 LNG 운반선을 폐기하지 않고 새 기능을 부여한다는 점, 해양플랜트를 새로 짓는 것보다 비용·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 LNG화물창 국산화 재조명
액화천연가스(LNG)를 보관 및 저장하는 화물창이 재조명된 한 해였다. LNG화물창은 LNG 운반선의 핵심 기자재인데 지티티(프랑스)가 설계 특허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국내조선사가 지티티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LNG운반선 가격의 약 5% 수준이다. 업계에선 ‘LNG화물창 국산화’를 통해 막대한 로열티 지출을 줄이고 중국과 격차를 벌릴 기회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 해외 생산망 확대
업계는 해외 거점을 통한 생산 효율화에 속도를 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소형 벌크선과 유조선을 만드는 자회사 HD현대베트남조선의 선박 건조 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임대를 통한 선박 블록 및 해상풍력발전용 구조물 생산에 나섰다.
삼성중공업은 일부 선박을 중국과 동남아에서 건조하는 방안을 고려했고,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다이나맥을 인수하며 해양플랜트 건조 역량을 강화했다. 지난 20일엔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매듭지으며 북미시장의 입지를 다졌다.
◇ 글로벌 프로젝트 ‘기대감’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FPSO(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프로젝트 계획도 관심을 모았다. 중국과 경쟁이 치열해진 선박 건조 시장의 변수를 줄일 대안으로 FPSO 등 해양플랜드가 재주목을 받았다. 향후 브라질발 해양플랜트 발주가 K-조선에 활력을 더할 것이란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됐다.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재개 분위기도 감지되며 LNG 운반선 대량 수주 기대감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