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최용구 기자] 올해 국내 철강업계는 여전히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산 물량이 밀려들면서 저가 공세로 이어진 데다 건설 업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조선업의 호황과 자동차 시장의 견조함이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했지만 실적 반등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의 수익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했단 관측이 나온다.
액화천연가스(LNG) 자가발전소 설립 투자, 모듈러 건축 활성화, 거래시스템 개선, 해외 수요처 확보 등 자구안을 실행하기도 했다. 반덤핑 제소 등 제도적 대응에도 나섰다. 연말에 불거진 제철소 내 화재 및 노동자 사망은 안전 공백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 LNG 자가발전 확대…화석연료 한계 '아쉬움'
지난 3월 현대제철은 충남 당진제철소 내 액화천연가스(LNG) 자가발전소 설립에 내년부터 3년간 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전기로를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전환하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용도다. 오는 2028년 준공이 목표다.
포스코는 올해 LNG발전으로 전체 전력 수요의 80% 이상을 충당했고, 동국제강은 중장기적인 LNG발전 도입 방침을 강조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하지만 LNG 역시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환경단체 등과 이견은 좁히지 못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연합뉴스◇ 건설 혹한기에 ‘철강 모듈러’ 관심 증가
미분양 증가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건설업계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철강 모듈러 건축’이 다시 주목받았다. 업계는 이에 따른 철강재 수요 창출을 기대했다.
철강 모듈러 방식을 적용하면 현장에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공장 자동 조립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건설 비용을 줄일 대안으로도 꼽힌다. 골조와 설비 및 마감재 등 공사의 상당 부분을 사전 공장 제작으로 대체해 인력 투입을 최소화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7월 모듈러 포럼을 열고 돌파구를 모색했다.
현대제철 냉연제. 사진=현대제철 제공◇ 해외 투자 및 수요처 확보
세아베스틸지주와 세아창원특수강은 지난 5월 미국 현지 특수합금 시장 진출을 위한 213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특수합금은 니켈, 타이타늄, 코발트 등 합금과 철이 배합된 소재로 급격한 온도 변화 및 고온 등 환경에서도 일정 성질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아베스틸지주는 미국 내 투자법인 ‘세아글로벌홀딩스’와 특수합금 생산법인 ‘세아슈퍼알로이테크놀로지’를 설립하고 세아창원특수강과 2년간 공동 투자한다.
지난 7월 현대제철은 유럽 고객사들과 ‘탄소저감 강판’ 판매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체코 자동차 부품사 TAWESCO, 이탈리아 자동차 강판 전문 가공 업체 EUSIDER와 9월부터 탄소자감 강판 부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공동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앞서 5월에는 볼보, BMW, 벤츠 등을 고객사로 보유한 독일 자동차 부품사 KIRCHHOFF 오토모티브와 공급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글로벌 완성차 및 부품사들과 협력을 통해 글로벌 탄소저감 강판 시장을 공략한다.
포스코가 개발한 버티포트용 이착륙 패드에 헬리콥터가 착륙한 모습. 사진=포스코 제공◇ 신기술 확보 매진·고부가 시장 공략
포스코는 UAM(도심항공교통) 등 항공기의 이착륙에 쓰이는 경량 이착륙 패드를 개발했다. 지난 6월 실증 테스트를 거쳐 8월에 개발을 공식 발표했다. UAM 인프라에 특화된 경량화 철강 소재와 강구조 기술 개발을 지속할 방침이다.
10월에는 네덜란드 하이퍼루프 프로젝트 참여 소식을 전했다. 포스코는 차세대 이동수단인 하이퍼루프 개발 과제에 특화 강재 ‘PosLoop355’ 352톤을 공급한다.
해당 강재는 고속주행시 발생되는 진동감쇠능(진동을 재료 내부에서 자체 감소시키는 특성) 효과가 일반강 대비 1.7배에 달하는 등 내진성능이 강화됐다.
◇ 유통·거래시스템 간편화
현대제철은 지난 5월 CJ대한통운과 손을 잡고 물류서비스 확대에 나섰다. 현대제철의 철강재 전문 쇼핑몰 'HCORE STORE'와 CJ대한통운의 화물운송 배차시스템 '더운반'의 플랫폼을 연동한다.
8월에는 KB국민은행과 함께 HCORE STORE 회원 전용카드를 출시하고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환경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충남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있는 밀폐 돔형태의 철광석 저장소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환경부 제공◇ 철스크랩 수급 '경고등'
지난 9월 KDB산업은행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동향’ 보고서를 발간하고 철스크랩 수급 불균형에 대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철강업계의 전기로 사용 비중이 늘면서 철스크랩의 공급 부족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전기로 방식은 전기아크를 사용해 철스크랩을 녹인 후 이를 가공해 조강을 생산한다. 전기로에서 1톤의 조강을 생산하려면 약 1~1.1톤의 철스크랩이 필요하다.
한국철강협회가 집계한 지난 2022년 기준 국내 철스크랩 자급률은 약 83%다. 부족분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다. 보고서는 일본이 자국 내 전기로 투자 확대에 따라 철스크랩의 수출을 점차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또 러시아, 중국 등이 수출관세 부과 및 수출쿼터 적용을 추진하는 등 철스크랩을 ‘전략자원화’ 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망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19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에서 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포스코 제공◇ 감산·매각 등 자구책 나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은 45년간의 가동을 마치고 지난달 19일 셧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7월 포항 1제강공장에 이은 두번째 셧다운이다. 적자폭이 컸던 중국 스테인리스강 생산법인 장가항포항불수강은 현지 매각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 제강·압연 생산시설의 셧다운을 추진한다. 동국제강은 원가 절감의 취지로 지난 6월 인천 공장에 도입한 야간조업 체제를 당분간 이어가게 됐다.
국내 철강사들의 공장 가동률은 최근 3년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시황을 지켜본 후 공급 과잉이 해소되면 재개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업황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일정주기로 호황과 침체를 반복했던 과거의 패턴이 모호해졌다는 설명이다.
◇ ‘안전 리스크’ 도마 위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지난달 10일 발생한 화재로 쇳물을 생산하는 일부 공장이 멈춰섰다. 화재 당시 공장 내부에 있던 근무자 8명 중 1명이 다치고 7명이 대피했다. 다친 직원은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지난달 19일 공장은 재가동에 들어갔으며 철강 제품 생산과 수급엔 차질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같은 장소(3파이넥스 공장)에서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하면서 ‘안전관리 부실’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선 지난 12일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설비 담당 직원이 현장 점검 과정에서 질식사한 것으로 보고 경찰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와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