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은준의 AI 톺아보기…AI가 초래한 이야기 산업 위기

연합뉴스 2024-12-25 00:00:26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은준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이 대대적 파업을 했다. 인공지능이 창작 산업에서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대본을 생성하고 스토리를 창작하는 도구로 쓰이면서, 인간 작가의 창의성이 점차 배제되는 상황에 놓였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뒤이어 자기들의 고용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챗GPT와 같은 언어 생성형 AI가 간단한 스크립트를 쓰는 시대가 됐고, 실제로 창작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인공지능은 과거에 작성된 스크립트와 플롯을 분석해 유사한 형식의 이야기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으며, 특히 시리즈물이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 필요한 대본의 사전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작가조합 파업

미국작가조합은 파업의 핵심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제한을 요구했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인간 창작자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도록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구는 단순히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파업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에서 어느 정도까지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25개국 8천명 이상의 작가를 대표하는 작가 조합인 유럽 시나리오 작가 연맹(Federation of Screenwriters in Europe, FSE)의 집행 책임자인 데이비드 카바나는 "인공지능을 사용해 본 대부분의 작가는 인공지능이 그리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래서 나는 아직 그것이 우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 업계의 다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연속극을 예로 들며 "동일한 캐릭터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서 피켓 시위하는 배우 마이클 래파포트

배우들 또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조 격인 '영화배우조합-미국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인연맹'(SAG-AFTRA)도 파업에 동참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파업은 18개월 동안 계속됐으나, 협상은 사실상 결렬됐다.

현 시점까지도 할리우드의 많은 예술가는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반발뿐 아니라 인공지능 기업이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하기 위해 자기들의 저작물을 무단 사용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도 배우 케빈 베이컨, 줄리앤 무어, 케이트 맥키넌, 뮤지션 오로라 등 수천 명의 배우, 가수, 작가가 허가 없이 인공지능 훈련을 위해 인간 예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생성형 AI 훈련을 위해 창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작품 뒤에 있는 사람들의 생계에 대한 중대하고 부당한 위협"이라며 "이러한 행위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 기업을 향한 공개 경고인 셈이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부 창작자는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 실제 배우가 '100% AI'로 출연한 영화

최근 개봉 예정인 영화 '나야, 문희'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영화는 현직 배우인 나문희 씨의 초상을 활용해 100%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연기를 선보인다. 5명의 감독이 각자의 작품에서 배우(나문희)가 다른 역할로 나와 우주공간을 유영하거나 첩보 액션의 주인공, '산타 할머니' 등으로 나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간다.

필자는 이 영화야말로 이 시대 논란이 되는 인공지능 영화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시사회에서 "인공지능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실제 배우인 줄 알았다"는 반응과 더불어 "영상과 음성이 어색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두 가지 평가가 모두 있었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스타 배우의 부담스러운 출연료와 CG 제작비, 대규모 로케이션 촬영에 드는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실제 배우와 스태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 역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의 등장을 보면서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배우의 초상과 연기 스타일까지 학습해 인공지능이 배우의 영역에서 스턴트나 대역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까지 해낼 날이 곧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야기 산업 종사자는 물론 정책 입안자와 사회 전반에서 모두 나서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영화 '나야, 문희'

한편, 이미 '이야기' 산업에서는 프로듀서, 작가, VFX 아티스트 등 많은 사람이 제작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공지능은 창작자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협력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업 과정도 여전히 문제가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설계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배제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창작자의 미래: 역할의 재정립과 새로운 기회

인공지능의 발전은 창작자에게 새로운 역할의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협업하고 그 결과물을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의 창의적 기여도가 새로운 형태로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는 인간의 감정적이고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학 작품의 창작을 하는 경우에는 인간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나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능력이 여전히 중요하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은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것을 '데이터 학습'만으로 쓸 수가 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일부 창작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이고, 인간 창작자가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은 예술가가 인공지능의 자동화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지 않고, 오히려 기술을 도구 삼아 예술적 가치를 더욱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특히 이야기 산업 종사자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일자리 감소와 대체의 가능성은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인공지능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새로운 산업적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 창작자의 역할은 점점 더 협업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며, 이야기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창작자들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찾고,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전 칼럼에서도 밝힌 대로 창작의 치열함과 그 안에 있는 숭고함은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