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최용구 기자]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K-방산에 대한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해였다. 앞서 성사시킨 수주 물량이 실제 인도로 이어지며 실적에 반영됐다. 잠수함,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K2 전차, 다연장로켓 등 방면에서 수출 논의도 진전시켰다.
반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면서 K-방산의 팀웍이 흔들리기도 했다. 연말 계엄 파문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중남미 방산 수출 새역사
HD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로부터 3400톤급 호위함 1척, 2200톤급 원해경비함 1척, 1500톤급 상륙함 2척 등 4억6290만달러(약 6229억원)를 수주했다. 국내 기업 중남미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기록이다.
HD현대중공업은 시마조선소와 협력해 오는 2029년까지 이들 함정을 순차적으로 인도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이 함정의 설계와 기자재 공급 및 기술 지원을 수행하고 시마조선소가 최종 건조를 맡는다.
◇ 한화시스템 잠수함 전술훈련장 구축... 사우디 MFR 공급 계약
한화시스템은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잠수함 전술훈련장’을 지난 4월 선보였다. 승조원이 해상에 나가지 않고도 수중항해, 무장운용 등 훈련을 수행할 수 있게 설계했다. 잠수함 내부와 한반도 주변 해양·수중·음탐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향후 잠수함 전투체계와 전술훈련장을 함께 공급하는 방안을 통해 수출 활로를 모색한다.
7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II(MSAM-II, 천궁-II)’에 대한 다기능레이다(MFR)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8억6680만달러(약 1조2000억원)다.
MFR은 모든 방향에서 접근하는 전투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까지 동시 탐지하고 추적할 수 있다. 한화시스템은 앞서 아랍에미리트 수출을 통해 확보한 M-SAM MFR 수출 모델을 사우디아라비아의 환경 조건과 요구에 맞게 개량 후 공급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차.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한화에어로 K9 자주포 공급 계약...‘광선포 레이저’ 배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월 폴란드 군비청과 다연장 로켓 천무의 발사대 및 사거리 유도탄 공급에 관한 2조2526억원 규모의 ‘2차 실행계약(Executive Contract)’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1차 실행계약(K9 자주포 212문, 천무 218대) 외에 2차 계약 물량(K9 자주포 152문, 천무 72대)을 추가 확보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제 기업으로 참여하고 국방과학연구소가 체계 개발을 주관한 ‘광선포 레이저’는 올해 말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광섬유 생산 레이저를 표적에 비춰 무력화하는 대공무기로 북한의 소형 무인기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전기 공급 방식이며 1회 발사 비용은 2000원 수준이다. 탄약을 쓰는 기존 대공포와 달리 낙탄에 따른 피해 우려가 없어 도심 내 사용도 가능하다.
7월에는 루마니아와 1조3828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현지업체와 협력해 K9 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차 36대 등을 2027년부터 순차 납품할 예정이다.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에서 한화오션이 한국형 구축함(KDDX) 등 수상함 모형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DDX 사업 둘러싼 양대 방산기업간 갈등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둘러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사업 이행도 덩달아 지연됐다.
서로 소송을 취하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고 양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산업체 지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KDDX 사업은 선체뿐 아니라 다기능 레이더, 전투체계 등 모두에 국내 기술이 적용되는 첫 사례로 ‘한국형 이지스함’으로도 불린다. 국내 최초란 타이틀이 달렸기 때문에 향후 특수선 사업에 있어 막대한 부가가치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향후 방산업체로 지정되는 곳이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수행하게 된다.
◇ 무인수상전 각축전
미래 먹거리인 무인수상정 경쟁은 본격화됐다. 내수의 주도권은 한화시스템, LIG넥스원이 쥐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이 아직 태동기임을 감안하면 향후 판도는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됐다. HD현대도 후발주자로 가세했다.
자율운항 가능 여부의 판단 지표인 내항성능 향상과 인공지능 플랫폼 기반의 데이터 확보는 기술적 과제로 꼽힌다.
미사일 시험 발사하는 KF-21. 사진=KAI 제공◇ KF-21 최초 양산 계약 체결... 인니 분담금 축소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 6월 방위사업청과 한국형 전투기 KF-21 최초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 KF-21 20대와 후속군수지원(기술교범, 교육 등)을 포함하는 약 1조9600억원 규모다.
현재 80% 정도 개발이 진행된 KF-21은 오는 2026년 6월 개발 완료 후 같은해 한국 공군에 전력화될 예정이다. KF-21 시험비행은 지난달 말 1000쏘티 무사고 비행을 달성하며 전체 시험비행 2000쏘티 중 절반을 마쳤다.
KF-21에 대한 인도네시아 분담금은 당초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조정됐다. 인도네시아는 총 8조1000억원이 투입되는 KF-21 개발비의 20%를 기술이전비용으로 부담하기로 했지만 재정난을 이유로 입장을 바꿨고, 방위사업청이 이를 수용했다.
◇ 미 해군, K-함정에 잇따른 러브콜
미 해군과 국내 업체 간 함정사업 협력은 급물살을 탔다. 조선소 노후화와 선박 건조 도크 부족 등 악재를 맞은 미국은 한국에 적극 손을 내밀었다.
자국 조선소에 대한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과 접점 포인트를 늘렸다. 한화오션은 지난 6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두고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앵거스 탑시 캐나다 해군총장(왼쪽 네 번째)이 지난달 10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해 잠수함 건조 현장을 둘러본 후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폴란드·캐나다 잠수함 수주 도전장
잠수함 부문에선 폴란드, 캐나다 사업 수주를 위한 물밑경쟁의 막이 올랐다. 폴란드 오르카 잠수함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는 약 3조3500억원,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은 60조원에 육박한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원팀을 이뤄 티케이엠에스(독일), 나발(프랑스), 사브(스웨덴) 등 경쟁사를 상대해야 한다. 납기 경쟁력을 비롯해 정부의 ‘절충교역’ 협상이 수주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목소리가 크다.
◇ 비상계엄에 ‘발목’
12·3 계엄 사태는 방위산업 수출을 위한 대외신인도를 하락시켰다. 당장 폴란드와 K2전차 2차 이행계약의 연내 성사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한국형 기동헬기 생산 현장을 방문하려던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조기 귀국했고, 스웨덴 총리의 방한 일정도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