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소미 기자] 올해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 글로벌 경기 침체에 내몰리며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졌다. 해외 수출 활로가 막히고 주력 제품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친환경·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분주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석화업계 '수익성 붕괴'
최대 고객인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률을 95% 이상 끌어올리자 한국산 범용 제품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주요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올해 평균 톤당 200달러대에 머물며 손익분기점(300달러)을 밑돌았다.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본 셈이다.
업황 부진 속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재무적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긴급 처방'을 내놨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약 2조원 규모의 회사채 조기 상환에 대한 특약을 조정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이로써 기한이익상실(EOD) 우려를 해소하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오퍼레이션 엑설런트' 프로젝트를 통해 공장 가동 최적화와 원가 절감에 집중했다. 기초화학 비중을 현재 약 70%에서 30% 이하로 축소하고,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법인 청산 및 미국·인도네시아 법인 지분 활용 등을 통해 1조3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추가 확보했다.
'다이어트'는 국내 석유화학 전반으로 확산됐다. LG화학은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효성화학은 자사 캐시카우인 특수가스 사업부를 효성티앤씨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공급 과잉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에틸렌 생산능력이 오는 2028년 2억6900만톤까지 치솟는 반면 수요는 2억1000만톤에 그칠 것이란 것이 업계 분석이다.
국내 에틸렌 신증설은 중단됐다.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NCC 규모 확대 작업은 전무한 상태다. 국내 NCC 신증설이 없는 건 연간 기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예외적으로 에쓰오일은 아람코 지원 아래 COTC(Crude Oil to Chemicals) 기술을 적용한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 오는 2026년부터 연 18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계획이다.
석화업계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전환에 사활을 걸었다. LG화학은 고부가합성수지(ABS) 분야와 반도체 세정액 'C3-IPA'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롯데케미칼은 고강성 난연 폴리프로필렌(PP)를 개발, 전기차 배터리용 소재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화솔루션은 전력 케이블용 초고압·고압(E/HV)급 반도전 컴파운드로 글로벌 시장을, 금호석유화학은 내마모성·안전성·연비 향상에 뛰어난 고기능성 합성고무(SSBR)로 전기차 타이어 시장을 노린다.
◇정유업계, 정제마진 악화…고부가 사업 전환
정유업계도 마찬가지다. 정제마진 악화로 실적에 큰 타격을 입은 정유사들이 고환율이라는 악재까지 만났다.
올 3분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평균 3.6달러를 기록했다. 1분기 7.3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업계는 통상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4~5달러로 본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정제해 나온 휘발유·경유 등 다양한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운임·동력비 등을 제외한 이익을 말한다.
이에 정유업계는 바이오 연료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겠단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는 바이오 연료 및 지속가능항공유(SAF), 바이오선박유 등 미래 친환경 시장에 적극 진출했다. HD현대오일뱅크도 바이오선박유를 해외에 처음 수출하며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
GS칼텍스는 SAF를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SK에너지는 SAF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해 내년 초부터 대한항공 여객기에 친환경 연료를 공급할 예정이다. 에쓰오일도 바이오원료 저장탱크 및 전용 배관을 준비하며 SAF 생산 기반 확보에 주력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은 변수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까지 인상,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장벽을 재구축할 경우, 세계 1·2위 석유 소비국 간 갈등이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유업계에 팽배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