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배구팀의 승리 도전기…송강호 주연·김연경 등 카메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국가대표'(2009) 등 2010년대 이전의 한국 스포츠 영화들은 강한 드라마를 내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스포츠와 역경을 이겨낸 등장인물의 사연을 엮어 승리의 순간을 더 극적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나온 '코리아'(2012), '국가대표 2'(2016), '드림'(2023) 등은 이런 성공 방정식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바람에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한국에는 스포츠 영화는 없고 '스포츠 신파' 영화만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신연식 감독의 신작 '1승'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일각의 우려를 낳았다. 만년 꼴찌인 여자 배구팀 핑크스톰이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분투한다는 시놉시스는 이미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뻔해 보였다.
그러나 '1승'은 이런 예상을 보란 듯이 깬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화끈한 배구 시퀀스를 몰아치며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주인공은 프로 경력이 없는 배구선수 출신 감독 우진(송강호 분)이다. 우진이 핑크스톰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철없는 어린 구단주 정원(박정민)은 핑크스톰이 시즌 중 한 번이라도 이길 경우 추첨을 통해 상금 20억원을 팬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대학 배구팀 감독으로 가려던 우진도 패배를 거듭하자 점차 승리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신파 서사에 몰두한 영화라면 우진이 멋진 연설로 팀을 뭉치게 하고 갈등을 빚던 선수들이 눈물의 화해를 하는 장면이 나오겠지만, '1승'은 철저한 전력 분석을 통해 핑크스톰이 실력을 향상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선수가 가진 장단점에 맞게 포지션을 변경하고, 상대 선수의 사소한 습관을 간파해 허를 찌르는 전술을 짜는 장면이 이어진다. 핑크스톰은 한두 세트를 따내며 조금씩 1승에 가까워진다.
핑크스톰이 상대와 펼치는 랠리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속도감 넘친다. 순식간에 서로의 진영을 향해 공이 오가고 가까스로 수비에 성공하는 광경은 실제 경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다.
특히 파이브스타즈와의 경기에선 서브를 넣을 때부터 공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까지를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배우들이 며칠에 걸쳐 리허설을 한 끝에 완성된 장면이다.
핑크스톰의 주장인 수지 역의 장윤주, 재일교포 출신 용병 유키 역의 이민지 등 총 16명의 배우는 수개월간 배구 훈련을 받았다.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 한유미와 이숙자가 이들의 코치를 맡았다. 두 사람은 각각 최강팀 블랙퀸즈의 에이스 유라와 해설위원 역할로 영화에도 등장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후반부 카메오로 출연해 반가움을 안긴다. 1990년대 남자 배구 전성기를 이끈 김세진, 신진식은 우진이 상대하는 팀의 감독으로 출연한다. 포항시체육회, 대구시청, 수원시청, 양산시청 등 배구단 소속 선수들은 핑크스톰의 상대로 코트에 섰다.
우진 역의 송강호는 캐릭터가 비교적 약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사실상 '원톱'으로 극을 이끌며 단점을 보완한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젊은 세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짜증 내는 모습도 웃음을 유발한다. 자칫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대사는 송강호의 입을 거치며 톤 다운된다.
다만 승률 10% 미만이던 우진이 갑작스레 명장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하다. 극적인 재미를 위한 것이겠지만 개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12월 4일 개봉.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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